:진흙탕이 된 바닥을 철퍽이며 밟고 지나갑니다.
어둠으로 젖은 길을 돌아갑니다.
내부로 들어서면,
계약자는 여전히 얕은 숨을 헐떡이며 쓰러져 있고⋯⋯.
집안도 나오기 전과 마찬가지로 엉망이군요.
당신은 문득 이상한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니까, 여기 나오기 전에 죽인 시체요.
시체가 어디 갔죠?
 
테오:....... (더 발을 떼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서 시체 외에도 나오기 전과 달라진 흔적이 있는지 주변을 둘러본다. 당장 감지되는 기척이든, 새로 남겨진 발자국이든.)
 
테오: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찾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만,
그것이 난데없이 걸어서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테오:(하필이면 이럴 때 마리나의 '놀아난다'는 표현이 떠오를 일인가.) 썩 유쾌하진 않네. (입꼬리를 문지르며 떨어져 나갈 듯한 문짝을 확실하게 닫아 두고 스카이우스의 옆에 앉아 세워 두었던 우산을 살짝 밀어 낸다.)
 
스카이우스:⋯⋯. 다녀왔어? (일순, 목소리에는 다정함이 묻는다. 아주 잠시였다. 이유는 네가 알 리가 없겠지. 급히 처치했다 해도 망가진 내장까지 전부 복구될 리가 없었고, 겨우 걸을 수 있는 몸으로는 필요 이상 멋대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 찬찬히 돌아 누우면, 감고 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트인다.) ⋯⋯.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테오:스카이......! (그러고 보면, 당사자의 반응 역시 궁금했던가. 상체를 숙여 망가진 몸을 부드럽게 끌어안고 힘을 약하게 싣는다. 진심으로 반갑다는 해사한 미소를 걸치고, 애절함을 곁들여.) 보고 싶었어.
 
스카이우스:(풀려 있던 눈이 번뜩 커진다. 놀람도 잠시였고, 이내 맞닿은 어깨 위에 손을 걸친 채 천천히 토닥였다. ⋯⋯. 밀어내지 않았다.) 나도. (그러나 나는 네가 다른 사람, 아니, 그보다 다른 존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넌 그 애랑 많이 닮았는데, 성격은 딴판이네.
 
 :작게 들리는 기분 좋은 코웃음 소리가 당신의 어깨 뒤에서 울립니다.
이런 게 잠시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진실로 애절했던 것처럼 품에 안깁니다. 눈치채 버린 거겠죠, 당신이 마을을 휘돌아다니며 들었을 이야기들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리웠던 거겠지요.
당신이 정말로 이 남자의 애인이랑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더구나 당신과 그를 겹쳐 보고 있다면요.
이것 만한 비극이 또 없습니다.
 
테오:(기구하기도 하지. 누군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필히 불쌍히 여길 것이다. 동정을 건네며 안쓰러워할 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탐스러워 보여서. 그 영혼을 자신에게 귀속시킬 수단이 하나 늘어났다는 데에 기쁨을 느꼈나. 서늘하게 식은 뒤통수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여전히 몸을 숙인 채로 속삭인다.)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어. 그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를 불러낼 방법을 어떻게 알았지?
 
스카이우스:(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만큼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한마디에 어두운 조소가 입가에 돌았다가, 이내 질문을 들으면 침묵으로 일관한다. 비 떨어지는 소리 사이에는 그나마 숨소리만 오갔다. 이렇게 좁은 거리인데도 어떤 목소리도 들키지 않으면서.)
 
테오:대답할 생각이 없나 보네. (이제 와서 불쾌한 감각이 끼치는 이유가 뭔지. 마녀라 불리는 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거슬리는 탓일까. 바닥을 짚고 상체를 들어올리면 서늘하던 시선이 부드럽게 풀려 미소를 그려 내며 시선을 마주한다.) 그럼 질문을 바꿔 볼까. 내가 없는 동안, 누군가 찾아오지는 않았어?
 
스카이우스:(괜스레 한 발 물러서는 태도에 스스로 먼저 발이 저렸는지 멀어지는 옷깃을 잠시 잡고 올려다본다.) 그 주문은 감옥에 있을 때 옆방에 있던 죄수가 말했어. (일그러진 미간으로 고민하더니, 이내.) 그리고 누군가 왔었어. ⋯⋯. 잠시 잠들었는지 누구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테오:(잡힌 것을 떨치려 하지도, 맞잡지도 않은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미간을 가볍게 눌러 펴 주었다. 그 죄수란 이가 이디스 본인이 아니라면 수하 정도는 되겠군. 금방 떨어져 흉부에 올라간 손바닥은 아래로 찬찬히 끌어당겨 아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을 기관들 위를 쓸어낸다. 돌아다닐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길잡이를 시키는 것이 효율적일 테니, 그리 이유를 붙이면서.) 옆방에 있던 놈은, 아는 사람이었나?
응급처치
기준치: 50/25/10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테오:
응급처치
기준치: 50/25/10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아, 조절이 어려운 탓일까요. 역시 이 별에서 힘의 형태를 온전히 하기에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쉽게 흐트러지기 일쑤입니다.
이유 모를 마법의 반동입니다. 스카이우스는 되레 고통을 느낍니다. HP -1
 
스카이우스:(왜인지 그의 손이 지나간 곳에 고통의 잔상이 남는다. 동공이 일순 커지고, 옷깃을 쥔 손은 반사적으로 스스로의 목을 덮었다. 허억,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이 기도에 턱 막혀 머무르면) ⋯⋯. 윽, 방금 뭐야! (지나치게 씁쓸하고 탁한 느낌이나, 영문을 몰랐기에 그것을 도로 삼켜 냈다. 찜찜한 표정으로 다시 시야를 마주한다.) 하하, 하. ⋯⋯. 그 죄수는 진짜 마녀였어. 그리고 나한테 이 주문이 필요할 거 같다고 말했지. ⋯⋯. 그래서, 이런 걸 왜 묻는 건데. 계약을 행하는 데 필요한 내용이려나?
 
테오:이런....... (둥글게 트인 다채로운 반원들과 순간 파들거린 손끝,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손 아래서 고통을 호소하는 생명의 숨소리가 달다. 달기만 해야 할 터인데, 감상이 곧 알 수 없는 갑갑함으로 물들어 눈매를 가늘게 뜬다. 미묘한 기분이다. 마법이 흐트러진 것에 대해서는 덧붙이는 것 없이 입을 연다.) 계약을 이행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는 있지. 그 마녀라는 이가,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거든.
 
스카이우스:(미묘한 감각을 뒤로하고, 이어진 말에 놀란 눈이 부릅 뜨이면서 입술도 함께 벌어졌다. 멍하니 있던 것도 잠시, 가늘게 뜨인 눈매를 따라 불그스름한 홍채를 시야에 담았다. 느슨해진 입가가 굳게 닫혔다 풀어진다.) 그래서 어떻게 할 작정이야? 그가 정말로 너를 기다린 거라면, 멀리 가진 않았겠지.
 
테오:당장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네가 말한 감옥으로 가 볼까 하는데. (자신의 불행을 예지하고 패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챘을까. 어느 쪽이든, 거기까진 알 필요 없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표정을 지켜보며 웃는 낯을 유지하다가, 몸을 완전히 뒤로 물려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몸상태가 이래서야 동행은 안 되겠군.
어떻게 가면 되지?
 
스카이우스:(멀어진 인영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마치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듯이.) 거긴 비어 있을 거야. (일어났으나 고개는 들지 못한 채 조용히 운을 뗀다.) ⋯⋯. 내가 죽었으니까.
(비를 막을 수 있을 리 없는 피 묻고 찢겨진 옷. 아무렇게나 버려진 옷 중에 그나마 입을 수 있는 겉옷따위를 난장판이 된 집안 구석에서 급히 찾아 걸친다. 와중에도 알량한 자존심이 뭐라고,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정자세로 허리를 세운다.) ⋯⋯. 웃기지 마. 원한다면 같이 갈 수 있어.
 
테오:두 번 죽고 싶어 안달 난 게 아니라면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일어서며 바닥에 세워 두었던 우산을 집어들고, 천쪼가리를 찾아 걸치는 모습을 바라본다. 분명 저렇게 돌아다니면서 아무렇지 않을 몸이 아니다. 흥미롭다는 듯 한쪽 눈썹이 들어올려졌다가, 굳이 말리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까딱인다. 그리고는 스미었던 물기가 반쯤 마른 겉옷을 벗어 네 어깨에 둘러 놓는다.) 직접 안내해 준다면야 나는 좋지.
 
스카이우스:시끄러워. 너랑 난 거래를 하는 거야. (걱정 같은 거 필요 없어, 그렇게 덧붙였는데도. 쉬고 싶다, 편하고 싶다라는 생각뿐이다.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다 못해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피로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였나, 여전히 조금은 축축한 옷가지에 둘러싸이면 저도 모르게 보이는 품에 기대게 되었다. 정말 갑작스럽게 저지른 일이었고, 충동이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 어깨에 고개를 처박으면 머리칼이 옷가지와 함께 사부작거려 나는 소음도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직전에 한 말과 전혀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스스로 위로하기라도 하려는 한마디는 본인도 느끼기에 수치스럽기 짝이 없다.) 젠장. ⋯⋯. 조금만 이러고 있어.
 
테오:....... (아, 또다. 출처 모를 갑갑함이 단전에서부터 기어올라 네가 기댄 어깨에서 넘실거리면, 어울리지 않는 당황을 했던가. 둥글어진 두 눈이 허공에 박혀 있다가 느릿하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으로 향하고, 꾹 다문 입매가 네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게 세 번째 소원이야? (이윽고 장난스런 음성을 목구멍 너머로 밀어내 봤자 낯짝은 그 분위기를 닮지 못한다. 이럴 땐 마주 끌어안는 게 자연스럽나. 네 어깨 주변으로 굽혀진 양팔은, 그대로도 몇 박자 더 공중에서 헤매다가 내려앉아 품에 든 것을 껴안는다.)
 
스카이우스:(현기증이나 잔재한 고통에 젖어 탁 트이지 못한 숨이 열기만 남아 네 옷깃을 타고 내려간다. 테디가 조금, 보고 싶네. 그 애도 이럴 땐 꼭 부끄러워 했는데. 표정을 보지 못해 알 수 있는 건 없었지만. 확실한 건 이 생물에게도 심장은 있다는 거다. 분명 차가운 피가 흐르겠지. 맥동하는 속도를 재어 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팔이 둘러진 어깨가, 안긴 이 품이 미묘하게 따뜻하다는 걸 느꼈을 땐 입술 새로 헛웃음이 새어나온다.) 마지막 소원은 아직 생각 안 해 봤거든. 그러니까,
밀어내면 되잖아. ⋯⋯. 어째서 네가 아닌 것처럼 굴지? 악마. 내가 아는 악마는 이렇게 상냥한 적이 없었는데. ⋯⋯. 하하. (허탈한 웃음과 함께 허공에 던진 그 질문은 너를 향한 확인이 아닌, 분명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정녕 자신이 소환한 악마가 죽은 애인과 같은 얼굴이라고 해서, 고작 그런 이유로 찬란했던 추억을 함부로 떠올리는 건지. 그래서,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어쩌면 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의연할 것만 같았다.)
 
테오:글쎄. (척추를 둥글게 말아 코끝을 차가운 옷감에 묻는다. 체취, 랄 것이 드러나기도 전 지독한 물비린내와 잔존한 혈향이 뒤섞여 후각을 어지럽힌다. 네 말대로 소원이 아닌 요구를 들어 줄 이유는 없다. 득실을 따져 보자면 이리 굴어 주어 네 환심을 살 수 있겠으나, 집어삼키기 위해 필요한 행위도 아닐 뿐더러 움직이기 전 고려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 기분이 나빠서. 어쩐지 치기를 받아주고 싶었던가.)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굳은 낯을 풀어 낸 뒤에는 자세를 펴고 네 고개를 들게 한다.) 당돌하게 요구하더니, 막상 안겨 보니 불만인가?
 
스카이우스:(숨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이제 피비린내 따위는 익숙하다 못해 내 향으로 남았을 거다. 얼핏 들으면 달콤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마음에 들었다는 말. 인간이 아니지만 처음 접하는 존재의 언어이니만큼 쉽게 관심이 기울지는 않았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불신, 죄악감. 그나마 그래, 그 충동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지워 버렸으나. 질문이 돌아오자 우스운 자존심 하나 때문에 감겨 있던 팔뚝을 퍽 밀쳐 낸다. 알고있어, 괜스레 한 행동이다. 변덕처럼 보일 것이고 미필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지금 낼 수 있는 힘으로 얼마나 강하게 밀쳤겠냐마는. 내 눈 앞의 이건 악마라고, 그렇게 스스로 세뇌하길 반복한다. 밀어낸 힘으로 벌어진 거리에서 재차 너를 올려다본다.) ⋯⋯. 이, 제 됐어. 잠시.
잠시 어지러워서 그랬다고.
바란 적 없어, 비켜.
 
테오:(그제야 익숙한, '악마'를 목도한 인간의 평범한 반응에 가까운 것이 돌아온다. 미지수가 아닌 것에 안도감을 느꼈나. 아무리 밀어내고 발버둥 쳐도 계약을 맺은 이상 벗어날 수 없을 것을. 찰나를 고요하게 일렁인 두 눈을 감았다 뜨면, 벌어진 거리 덕에 숨통이 트였는지. 호선을 그려 번진 미소와 함께 네게 둘러 준 겉옷 주머니에서 금빛 목걸이를 꺼낸다.) 거짓말에 재주가 없구나. (붉게 타오르는 보석을 네 목에 걸어 잠가 주고는 발치에 떨구어진 우산을 집어 문 밖으로 펼친다.)
앞장서.
 
스카이우스:(네 속을 알 수 없으나 이 빗속에서도 여상하게 어둡게 빛을 발하는 홍채만 홉뜬 시야를 오롯이 점거했다. 목걸이를 마주하자마자 보인 낯은 놀란 눈. 아니, 그보다 숨기려고 한 정제된 표정. 그러나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얼마 안 있으면 나는 완전히 죽는다 해도. ⋯⋯. 그때까지 내가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입 다물어. (한 방 먹은 기분이었으니 그대로 눈살을 찌푸렸다, 목걸이의 호박색 보석을 왼손에 쥔 채. 내어진 길로 나서는 사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단 한 명도 남겨 놓지 않을 거야, 그 말만을 연달아 뱉는다.)
 
 :둘은 빗길로 나섭니다.
천장을 때리던 빗소리는 더 가까이 들리고, 스카이우스는 찬 기운에 놀라다가도 이내 몇 발 앞을 발치로 툭툭 쳐 보더니 진흙 위 비교적 안전한 곳을 밟습니다. 비를 맞으며 당신의 앞에 먼저 나섰지요.
어디로 안내를 부탁할 작정인가요?
 
테오:(비바람 탓에 큰 의미는 없었겠으나, 네 머리 위로 우산을 든 채 한 걸음 뒤에서 따라 걷는다.) 감옥은 어느 방향이지?
 
 :지금은 어두컴컴한 새벽입니다.
그 길을 따라가서 도착한다 해도 불 없이 얼마나 많은 걸 확인할 수 있을까요?
비 탓에 등불 따위를 밝히려 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스카이우스:⋯⋯. 대장간. 그땐 고작 주변을 확인하는 게 전부였지만 대장간이었을 거야. (머리 위로 닿던 빗줄기가 금세 눈에 띄게 잦아들어 일순 머리칼을 넘기면서 뒤를 흘긴다.)
 
 :분홍빛의 머리카락에 물들어 있던 핏빛은 지워지고 천천히 색을 되찾습니다. 그럼에도 탁하고 어둡게 느껴지는 건 분명 날씨 때문일 겁니다.
 
테오:지리 파악이 우선인가....... (찰박이는 발걸음을 이으며 홀로 중얼거리다가 두 색상의 홍채가 잠시 자신을 향하자 반사적으로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네가 자는 동안 돌아다니긴 했지만 무엇이 있는지 전부 확인하지는 못해서. 주로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은 어디지? 그 마녀라는 이에 대해 떠들기 시작한 건 언제쯤인지 알고 있어?
 
스카이우스:그것도 전부 복수에 필요한 질문? (그 시선과 마주치고, 물음이 늘어지자 일순 걸음을 멈추었다. 비슷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나 언뜻 보기에 비열한 웃음이다. 어차피 보이면 다 죽일 건데 뭣하러 묻느냐는 듯) 마을 광장 쪽이라면. ⋯⋯. 그래봤자 건물은 몇 개 없어, 방앗간이나, 대장간. ⋯⋯. 아, 약초꾼이 살던 집도 있지. 그 외에는 전부 민가라고.
⋯⋯. 그건 나도 알고 싶은데. 어쩌다 이 마을에 오게 됐는지조차 모르거든.
 
테오:낌새를 느껴 쥐새끼마냥 도주라도 시도하거나 숨어들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귀찮아지니까. (미리 알아 두는 게 낫지. 네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가면 짤막하니 바람이 새었다가 말소리가 이어진다.) 전부 처리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네.
(오두막은 밤을 보내기에 척박한 환경이고, 마침 빈 집이 새로 몇 채 생겼으니 사체를 확인할 겸 들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여성들을 죽였던 곳으로 발을 돌리며 따라오라는 듯, 네 등을 가볍게 당긴다.) 주술에 대해 알려주며 다른 말은 안 하던가.
 
스카이우스:(올라간 입가에 큭큭대는 웃음이 일순 맴돌았다. 어둠 사이에서 시야로 알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끌어당기는 힘에 앞으로 순순히 걸어나간다.) 달리 없었어. ⋯⋯. 정말 알려 준 것뿐이라고. 그 주문을.
하지만 뭐, 말했잖아? 이 좁은 마을에서 쉽게 도망쳤겠어. (몸을 바로잡고 네 옆에서 걸어간다. 우산이 딱히 쓸모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뭐. 없는 것보다야 낫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테오:그런가. (처음 무언가를 제공할 당시 명시한 사항이 아니라면 나중에 요구한다 한들 잡아떼면 그만일 터인데, 그 알려줬다는 마법진을 다시 확인해 보아야 할까. 마리나에게 전해 들었던 것들을 곱씹으며 민가에 도착할 때까지는 침묵을 유지한다. 이따금씩 밀려나는 우산을 꿋꿋이 기울여 든 채.)
(한번 걸었던 길의 끝에 다다르면, 들고 있던 것을 네게 쥐여 주고 먼저 문을 열어 내부를 살핀다.)
 
 :우산은 쉽게 바람에 제 자세를 잃습니다. 그러면서도, 결국 도착한 마을 안쪽에선 당신이 살육을 펼쳤던 집, 아니 이제 빈집이죠. 하나를 골라 들어섭니다.
우산은 스카이우스의 손에 쥐여 준 채로.
끼익, 짧게 나는 소음과 함께 열린 문틈 사이로는 약한 빛이 새어 나옵니다. 다 꺼져가는 초에 의존해 내부를 살피면⋯⋯.
이곳은 아까 처음 들렀던 집이네요.
그리고, 아무도 없습니다.
시체조차요.
 
테오:쯧. (그새 다녀갔군. 눈매가 일순 가늘어지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너를 집안에 들이고 문을 닫는다. 원하는 것이 사체였던가. 그 덕에 이곳 인간들의 경계심이 조금 늦춰지기야 하겠지만,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내부를 크게 돌며 부엌이나 침실, 욕실 따위의 위치를 얼추 파악해 둔다. 그러다 문득, 스카이우스 역시 인간이라는 걸 기억한 건지.) 허기지진 않아?
 
스카이우스:⋯⋯. 빗물로 배를 채우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곡식 알갱이나 쥐새끼들이랑 나누어 먹었지. 배가 고픈 게 중요했겠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물론, 그렇게 죽었고.
(핏물이 묻어 있는 실내를 작은 불에 의존해 시야로 훑는다.) 악마에게 삶을 빌어 더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없어. 너도 원하지 않겠지만. ⋯⋯. 난, 염원 그것 하나만 이루면 돼.
 
테오:(한쪽 눈썹을 들어올리고 읊어진 문장들을 듣다가 돌아선다. 기묘한 일이다. 결국 계약이 끝나는 순간까지 명줄이 붙어 있기만 하면 될 것을. 시간이 흘러 바깥의 한기가 음식으로 스며든 지는 한참이겠지만, 자신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이 집의 사람들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엌에서 먹을 만해 보이는 고기 요리와 빵 등을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렇다면 더욱 먹어야겠네.
널 두 번 살리는 일쯤이야 어렵지 않지만, 내게도 대가가 없는 주문은 아니거든. 복수하고 싶거든 살아.
 
스카이우스:(문 바깥에서 들어서지 못했다. 빌어먹을. 이상한 기분이 속으로부터 몰아쳤다. 단전을 긁어내는 듯한 묘한 허기. 다만 공복에서 올라오는 것이라 설명하기엔 어설픈 감각이다. 불유쾌한 울렁임을 욱여넣고 그가 하는 짓거리를 먼발치서 관망했다.) 뭐 하는 짓이야.
⋯⋯. 네 눈엔, 내가 빵쪼가리 몇 개 먹는다고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 같냐? (문을 완전히 열어젖혀 우산을 내팽개치고 다시 그의 앞에 섰다. 바닥에 걸어 온 자국마다 물이 흥건하다. 마치, 이래도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살리고, 모두를 죽이는 게 네 힘이라 한들, 내가 널 불러냈어. 그냥 사용인 같은 거라고. (그러면서 무식하게 빵을 하나 집어 입에 쑤셔 넣는다. 억지로라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으려는 듯 제 입을 막은 셈이다) ⋯⋯. (완전히 그 의견에 부정을 말하진 않는 태도였으나 기분 나쁜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째서. ⋯⋯. 아, 개 같이 그리움만 커져서는 악마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분명 그 녀석 때문이겠지. 삼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됐지.
 
테오:....... (흐름을 읽어 낼 수 없는 날선 감정의 응어리와 분함, 억지로 의식해서 힘을 준 행동들. 역시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답지 않게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도 구태여 곁에 머물러 시야에 두는 것은 필히 그런 이유에서일 테다. 내팽개쳐진 우산을 구석에 세우고 문을 닫아 세찬 바람을 막아 두고 나면, 이미 음식물을 삼켜 낸 네 건너편에 앉아 자신 역시 빵을 한 조각 떼어 입에 넣는다. 딱히 의미는 없는 행위였으나, 평범한 식사를 하듯 느릿하게. 네 낯 너머에 아른거리는 사고를 읽어 내려는 듯 빤히 바라보며.) 그걸론 부족할 텐데.
 
스카이우스:(꿀꺽, 목 근육이 움직임과 동시에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가는 감각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음식을 안 먹은 지 얼마나 된 건지도 모를 몸이라, 배고픈 걸 의식하지 못하는 정도였나. 너 또한 음식을 입 안에 넣는 걸 보고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치미는 잡념을 지우려는 듯.) 난 됐어, 적당히 먹고 일어나. ⋯⋯. 애당초 여긴 왜 온 거야?
 
테오:나야말로 먹을 이유가 따로 없는데 말이야. (헛웃음과 함께 잠시 시선이 테이블 위로 떨어진다.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손끝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딱 봐도 생전에 잘 먹고 지낸 몰골은 아닌 데다 회복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할 터인데. 주어진 것도 먹지 않는 건 괜한 고집인지, 접시에 담아 둔 음식을 따로 치우지는 않은 채 갈무리를 하고 침실 쪽으로 발을 옮긴다.) 아침까지 이곳에 있을 예정이야.
 
스카이우스:(먹는다고 했다가, 또 금세 일어나네. 의중 모를 행동에 미간을 퍽 찌푸리고는 흥, 콧바람을 불었다. 일어나는 걸음은 시선으로 좇는다. 들려오는 말에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여기에서? 로제, 그 인간은 없는 거 보니까 이미 처리했나 본데. ⋯⋯. 그래도 기분 나빠.
 
테오:(일정하게 나무바닥에 부딪히던 구두 밑창이 우뚝 멈춰선다. 어쩌면 네가 왜 마음에 들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반응 하나하나가 의외라. 어둑한 공간 속 익숙한 웃음기 담긴 낯 대신 정적으로 가라앉은 노을빛이 바라보던 문 위를 일순 방황하더니, 이내 혼자 소리 내어 작게 웃는다.) 오두막 지붕은 비를 막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어디서 잘 생각이지?
 
스카이우스:(붕 떠 있던 미간이 묵직하게 눌려 다시 구겨지는가 싶으면) 그렇게 비웃는다고 달라지겠어? 정말, 속내를 하나도 모르겠단 말이지. ⋯⋯. 해가 뜨든 달이 뜨든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거기서 잤는데 비라고 다를 게 있겠어? (작게 헛웃음이 뒤따른다.) 그냥 그러고 자는 거지. 이유도 모른 채 미움 받으면 그렇게 살아야 되더라고.
 
테오:그렇게 만든 이들을 전부 죽여 달라면서도, 그곳에 머물러 있겠다는 건가? (무심코 고개가 돌아갔다. 언뜻한 불쾌함이 담겨 좁혀진 눈매 사이로, 너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 옆까지 다가선다. 스스로를 증오로 가득 채우겠다면, 그것이 나를 향했으면 했다. 아직 축축한 분홍빛 머리끝을 그 너머에 자리한 것 대신 시야에 담기를 몇 초간, 여윈 몸을 들어올리려던 것을 관두고 그 팔을 끌어 침실 쪽으로 떠민다.)
 
스카이우스:⋯⋯. 내가 원망하는 건, (입술을 꾹 다문다. 무언가 말하려던 걸 욱여삼켰다. 작은 정적을 일구었다. 내가 원망하는 건 그애를 처절하게 죽인 놈들이야. 옆으로 네가 다가서고, 팔이 잡아 끌리면 그렇게는 도저히, 차마 말하지 못했으니까) 아무튼! 내가 가진 것들이 망가졌다고 인간들이 원망스러운 게 아니거든.
(그새 빵 하나 먹었다고 기운이 조금 돌았는지 큰 소리도 내고, 떠밀려 선두에 서서 침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손을 놓으려 했다.) 알았다고, 들어가면 되잖아.
 
테오:(손을 뿌리치려는 기색이 보이면 큰 미련 없이 그것을 놓아 주고는 네 등을 슬쩍 밀어 문턱을 넘게 한 뒤, 그곳에 서서 몸을 비스듬히 기댄다. 그러고는 어찌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듯 손을 펼쳐 보였다가, 네게 감겼던 마디들을 느릿하게 두어 번 쥐었다 편다. 자신의 죽음이 원통해 나를 불러낸 것이 아닌 복수라면, 네 말뜻을 읽어 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팔을 들어 가슴께에서 엮고는 헝클어진 뒤통수를 본다. 내 얼굴에서 넌 무엇을 보고 있을지.) 이곳에서 죽이진 않았으니 깔끔할 거야.
 
 :스카이우스는 놓은 손으로 구겨지고 식은 침구를 펼치려 하나 그마저도 머뭇거렸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어야겠지요.
끝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침대 머리맡의 가족사진을 발견한 스카이우스는 액자를 조심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엎어 둡니다.
 
스카이우스:(젖은 옷가지나 머리칼을 대충 정리하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복수가 전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 들면⋯⋯ 너무 나약해진 거겠지.
(네게 향하지 않아 혼잣말인지 아닌지 헷갈릴 법도 한 목소리를 조용히 뇌까리고는 조그맣게 뚫린 창 바깥에 시선을 둔다. 가장 잔혹하게 죽이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관심 없었을지도 몰라. 미련한 생각 따위를 하면서.)
 
 :바깥엔 여전히 밤비가 내리고 있고, 자그마한 창 외에 벽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나마 그곳으로 들어오는 불빛과, 침대 머리맡에 놓인 서랍 위 녹아 꺼져가는 양초가 시야를 밝히는 전부입니다.
 
테오:(방 안쪽으로는 발을 더 들이지 않고, 서 있는 자리에서 시선 끝으로만 너를 좇는다.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가 버릴 이처럼, 실제로 그럴 계획이었던가. 미동도 않고 그리 서 있다 세상 모든 피비린내를 말끔하게 씻어 내릴 마냥 쏟아지는 빗소리 쪽으로 네 고개가 돌아가면 작은 소리로 혀를 차며 나무 판자 위에 구두 밑창을 문지른다. 그리고는 그대로 문을 닫고 침상 옆에 등을 댄 채 앉는다. 괜스레 작은 체구가 눈에 들어온 탓이다.) ....... 아침에 봐.
 
스카이우스:됐다. (청승맞은 소린 그만해야지. 바깥에서 시선을 그만 거두고 침대에 몸을 뉘이려 하면 바닥에나 털썩 앉는 머리통을 발견한다.) ⋯⋯. 넌 안 자냐?
악마는 잠 같은 거 안 자도 되고⋯⋯ 막 뭐 그런 건가?
 
테오:(질문이 돌아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해 두어 번 눈을 깜빡이다가 어울리지 않게 웃음이 터진다.) 잠시 눈은 붙여야지. 내 수면을 걱정해 줄 여유가 생겼다니, 몸 상태는 많이 호전됐나 보군.
 
스카이우스:(저도 물어 놓고 어이가 없어 같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피곤한 눈을 길게 문지른다. 허름한 옷가지가 사부작거리는 소리 다음으로 풀썩, 몸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 걱정 같은 거일 리가 없잖아, 이거 순 미친놈 아냐. (나라고 다를 건 없는 또라이겠지만. 네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돌아 누워 버린다.) 그래도 잘 자라.
 
테오:푹 쉬어 둬. (눈을 떴을 땐 다시 바쁜 하루가 시작될 테니. 어둠 속에서 짧게 당겨진 입꼬리와 천이 맞대어 비벼지는 소리를 따라 눈이 굴러가다, 이불 위로 팔꿈치만을 걸치고 눈꺼풀을 감는다.)
 
 :길고 긴 밤도 머잖아 지나갈 겁니다.
증오 가득한 복수마저도, 한순간이니까. 지나갈 거예요.
해가 밝아 옵니다.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았어요. 안개 사이로 흐릿한 새벽녘의 볕이 들어옵니다.
뒤척이던 스카이우스는 몸을 일으켭니다.
어제는 정말 정신 없던 하루였죠. 오늘은 새로운 계약자와 함께 벌일 오늘의 일이 남았으니까요.
 
테오:(언제 일어나 움직인 건지, 밤에는 그 자리에 없었던 의자에 앉아 가만히 너를 지켜본다. 잠든 적 없는 듯한 외관으로 익숙한 미소를 머금은 채. 시선이 마주치면 손아귀의 로켓을 탁 닫아 주머니에 넣으며 꼬았던 다리를 풀어 내린다.)
이곳의 비는 지치지도 않네.
 
스카이우스:안 잔 거냐? ⋯⋯. 역시 악마는 잠 안 자도 되는 그거, 그거냐. 맞지. (고개를 쭉 빼고 구부러진 자세인 채 너를 가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빗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다. 말을 돌리면서 뒷머리를 긁적인다.) 나도.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건 처음 봐.
 
테오:그렇다고 해 둘까? (달리 할 일이 없어 결국 잠을 청하긴 했으나 일주일 정도는 수면을 취하지 않고도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 짙어진 웃음기와 함께 눈매를 접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러모로 일에 방해보단 도움이 되고 있으니 나쁠 것 없겠지.
오늘의 상태는, 얼만큼의 활동이 가능해?
 
스카이우스:(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이 터진다.) 얼마큼 움직일 수 있냐니 웃긴 질문이네. 내가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아냐? 움직여 봐야 알겠지. ⋯⋯. 우선은 네 덕에 나쁘지 않아.
 
 :일상적인 활동은 가능할 겁니다. 당분간은요.
하지만 굳이 스카이우스와 함께 움직이진 않아도 되겠죠. 원하는 대로 움직입시다. 소원만 이루어 준다면, 그는 뭐든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테오:헛수고를 들이진 않은 모양이라 다행이군.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다시 움직일 채비를 한다. 일단은, 할 일이 제법 남아 있으니.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도 확인했겠다, 침실 문을 열고 나선다.) 정 이곳에 머물기 싫다면 오두막으로 가 있어.
 
스카이우스:(괜한 말을 했나, 쳇, 하는 소리와 함께⋯⋯ 옷 주위로 버석거리는 침구를 옆으로 밀어 치운 뒤 상체를 일으켰다. 진물이 흐르는 상처라던가 그 위로 아직 수복되지 않은 살점 따위가 꺼끌꺼끌하게 천에 부대껴 불편한 듯 숨을 얇게 들이켠다.) 혼자 가려고? 어, 돌아가 있을 테니까 그럼, ⋯⋯.
기다릴게.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무사히 돌아갈 겁니다. 이 마을은, 이곳을 제일 싫어하는 그가 제일 잘 아니까요.
 
테오:....... 다녀오지. (뱉고 나서도 입안에서 잠시 감돈, 어색한 인사말의 감각이 싫지 않다. 이내 등을 돌려 간밤에 물기가 증발해 이전보다 약간은 뻣뻣해진 겉옷을 침실에서 가장 가까운 의자에 걸어 두고는 밖으로 발을 뻗는다.)
(대장간 옆에 있다고 했던가. 여전히 질퍽한 땅을 밟으며 마을에서 대장간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는지 훑어본다.)
 
 :마을의 풍경은 여전히 삭막합니다. 간밤에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조용하다니요. 도망이라도 간 걸까요?
당신은 겉옷도 없이 비를 맞으면서 대장간으로 향합니다.
대장간으로 보이는 건물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금세 마주합니다.
그리고, 어라.
사람이 대거 모여 있습니다.
대장간 앞에는⋯⋯ 제법 되는 머릿수인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당신이 숙청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겠죠. 아직은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리나가 있어요.
바깥이 밝습니다. 그러나 짙게 깔린 안개 덕에 아직까지 당신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조금만 더 다가갔다간⋯⋯.
뭐, 죽여 버려야 할까요?
 
테오:(이곳에 온 뒤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그런지, 예상치 못했던 풍경이다. 마리나가 보이면 눈매를 좁혔다가 입매를 문지르며 서 있는 곳에서 그들의 말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 본다.)
 
 :그들의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가족을 몰살시킨 범인을 찾아야 한다고요!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돼요.
 
 :마리나는 그들을 모았을 겁니다. 모두의 곁을 지키고 있으나, 무어라 한마디 하지 않아요. 그야, 그녀는 범인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 겁니다.
머잖아 그들은 횃불을 밝힙니다.
인원은 아이와 어른을 포함해 15 명 남짓, 이곳에서 몰살시킨다면 쉬운 일이겠네요.
 
테오:(듣고 있자니 소리 죽인 웃음이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도망칠 궁리나 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했더니, 이리 직접 찾아 나설 계획이었을 줄이야. 스카이우스, 네가 하늘에게 외면만 당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망설임 없이 고요하게 인파 쪽으로 걸어나간다. 운이 안 좋다면 접근하기 전에 발각되겠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재밌겠지.)
 
테오: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무래도 그들은 당신이 다가오는 걸 모르는 듯합니다.
그러다 가까이 접근했을 때, 문득 고개를 든 한 사람이.
 
당신, 은.
 
 :멀지 않은 거리에서 당신과 눈이 마주칩니다.
 
테오:이거 원, 마주치는 족족 이리 격한 환영을 해 주니 몸둘 바를 모르겠어. (속삭이며 남은 거리를 한달음에 좁히고는, 를리에의 안개를 펼친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횃불을 붙들어 타오르는 것을 그의 입에 처박아 누른다.)
 
 :마법을 사용합니다.
 
 :마력 소모와 라운드 책정은 필요 시 수호자가 안내해 드리니 사용할 때 효과 인지만 하고 있으면 됩니다.
를리에의 안개 생성. 이 안개는 30 분 동안 당신이 어디로 움직이든 당신의 사각을 가려 줄 겁니다.
현재 남은 이성과 마력은 각각 38, 15입니다.
눈 앞에 있던 이는 더 말하지 못하고 입에 타는 것이 물린 채 쓰러집니다. 채 꺼지지 못한 것이 입안에서 불타오르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해요.
 
방, 방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시력이 좋은 당신만이 이 안개의 너머를 볼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오래 내린 비 덕분에 이 공간에는 안개가 어색하지 않아요.
자, 어렵지 않게 한 명을 쓰러뜨렸네요.
 
테오:하나. (몸을 돌려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이의 목덜미를 쥔다. 다른 손아귀는 그 눈두덩이 위에 올려 이마를 단단히 붙들고, 간결하지만 확실한 동작으로 척추를 비틀어 깨어뜨린다. 이걸로 둘.)
 
 :영문도 모르고, 윽!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는 짓이겨집니다.
 
그, 그래. ⋯⋯. 맞아, 마, 마녀. 마녀가 마을에 저주를 내린 거야! 으악!!!
 
테오:(뒤이어 있는 힘껏 팔을 휘두르면, 손끝으로 누군가의 복부를 꿰뚫어 그 내장을 전부 끄집어내기를 연달아 두 번. 땅에 떨구어진 횃불로 또 다른 누군가의 눈과 귀를 전부 지져 놓기를 한 번.)
 
 :그렇게 살육을 저지르다 보면 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어요. 그저 염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밟고 당신은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머리를 비틀 때.
 
마리나:⋯⋯. 그만!
그만두세요!!!!
 
 :이미 모든 일은 벌어졌는데도요.
그리고 마리나는 바닥에 주저앉습니다.
사슴 가죽으로 만든 보따리를 끌어안고는, 흐느끼기 시작해요.
 
마리나:또, 또, 또 이디스를 막지 못했어. ⋯⋯. 또!!!
 
테오:(다리를 걸어 나자빠진 몸뚱아리를 으깰 듯 짓밟고, 마지막 남은 머리통을 아직 그러쥔 채로 마리나를 내려다본다. 빗물에 젖어 반투명해졌던 셔츠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다.)
마침 그 이디스라는 걸 찾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녀는 당신을 볼 수 없겠지만. 알고 있겠죠. 이 일이 당신의 소행이라는 걸.
 
마리나:⋯⋯. 그 자가 알량한 복수심만 참았더라도, 이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당신의 셔츠는 어느새 붉게 젖어 있었고, 으스러진 살점이나 빗물에 다 녹아들지 못한 핏물 따위가 어지럽게 묻어 있습니다.
마법은 원한다면 해제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리나의 처우는 당신이 결정해야겠죠.
그녀는 이미 무너졌습니다. 또 한 번의 실패로요.
 
테오:(한쪽 눈썹이 꿈틀거린다. 몸을 숙여 마리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마법을 거두면, 불꽃을 닮은 두 눈동자가 그를 향해 있다.)
저것들이 무어가 그리 소중하다고. (비웃듯, 입꼬리를 당긴다.) 그 가치를 죽음으로 다할 수 있기에 죽여 주었는데, 마음에 안 드나 봐.
 
마리나:인간의 목숨은 전부 소중하다거나, 그딴 희망찬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이디스가 무얼 하는지는 몰라도 분명, 이 망할 시체들로 무언가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어. ⋯⋯. 나, ⋯⋯. 나는.
막아야만, 했는데. ⋯⋯.
 
 :시퍼런 보랏빛 눈과 시선이 맞은 것도 일순이었고, 자욱한 안갯속에서는 피에 젖은 듯한 오열만이 퍼졌습니다. 보따리를 내팽개치고 다시 고개를 처박고 있는 마리나에게서는 이제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테오:이제야 좀 쓸모 있는 소리를 하는군. 기우는 아니었나. (더는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길바닥을 나뒹구는 시체 15 구를 돌아본다. 거슬린다면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하는 법. 내가 어떤 방법으로 죽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시체의 훼손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지. 원하는 것이 살덩이일까, 뼛조각일까. 사람의 죽은 흔적이라면 아무래도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며 죽은 것들을 모아 한 데 쌓아 놓고는 마리나가 내팽개친 가죽 보따리를 구두코로 툭 친다.)
이 안에는 뭐가 들었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마리나를 두고,
이제 마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 빗소리만이 가득합니다.
보따리⋯⋯. 직접 열어볼까요?
 
테오:(불쾌한 은화를 나누어 주고 다니던 이의 보따리라 내키지는 않지만, 그런 만큼 유용한 물건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여겨 보따리를 집어든다. 되도록 안의 내용물이 쏟아지거나 그것에 닿지 않도록 유의하며 열어 본다.)
 
 :안에는⋯⋯.
짠!
기대한 은화는 없습니다만, 웬 종이뭉치가 있습니다.
외에는 특별한 게 들어있지 않아요.
 
테오:......? (근처에 비를 차단할 만한, 머리 위를 막아 주는 곳을 찾아 그곳에서 종이 뭉치를 펼쳐 본다.)
 
 :그걸 펼쳐 보면, ⋯⋯. 어설프게 이디스의 경로를 추적한 지도예요.
당신은 어떤 집 처마 아래에 서 있습니다.
마리나에게는 이제 무엇도 남지 않았으니, 살려 둔다고 해도 특별히 해가 되진 않을 겁니다.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남은 일은, 이디스를 찾는 일일까요?
 
테오:(지도를 훑고는 두어 번 반듯하게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저리 절망할 정도로 간절하면서도 무능하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마땅히 다른 수는 떠오르지 않네. (중얼거리며 쌓아 둔 시체더미로 걸어가더니 딱딱하게 굳어 가는 살덩이들 사이로 손을 비집어 불꽃을 낸다.)
기준치: 55/27/11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비에 젖었으나 차가운 살갗이나, 얇은 천은 금세 타들어갑니다.
 
 :불길이 하늘을 향해 치솟습니다.
마리나에게선 이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겠군요.
마을 사람들도,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번째 복수의 끝. ……. 남은 것은 당신과 이디스의 만남뿐입니다.
시체도 없애 버렸으니, 이디스의 목적이 무엇인진 몰라도
 
 :당신에게 불만이 생겨 버렸겠군요.
비웅덩이에 맞닿아 꺼질 것만 같던 불길은 여전히 태울 것이 남았는지 시끄럽게 일렁입니다.
마지막 순간 그들의 눈에 새겨진 것은 절망뿐…….
당신의 사각에 있던 를리에의 안개도 꺼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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