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카이우스:
 
 
59
정신60 30 12
성공
 
 
 
 
스카이우스:(방금 본 것은 뭐였지. 슴벅슴벅 눈꺼풀이 무겁게 장막을 이루었다. 가슴이 저리고, 아주 차가운 물에 머리 꼭지까지 잠겼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지독하게 안구가 시큰한 것 같기도 했다. 의도치 않은 눈물 한 줄기가 뺨에 흘러내렸다. 그 물기는 왼쪽 눈의 시야를 가렸다. 무심코 서늘함이 전신을 지배해 탄식을 내뱉었다.)
 
아.
 
(……시야가 수복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뭐지?)
 
 
스카이우스:(왼쪽 뺨만을 적신 물기를 손등으로 두어 번 밀어 훔쳐냈다. 습, 하. 짧고 벅찬 호흡이 따랐다. 꼭, 참아낸 것처럼……. 무거운 상체를 느리게 일으켜면 방금 깨어나 그런지 오감들이 어색했다. 부러 주먹을 꽉 쥐었다 풀어내며 거울을 응시했으리라. 보이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자세히 보니…….
 
 
스카이우스:(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스카이우스:
 
 
64
이성55 27 11
실패
 
(아예 몸을 일으켜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다시 한 번 확인했으나 온몸에 소름이 확 끼치고 숨이 가빠져 거칠게 들이켜고 내쉬었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고,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언어 대신 소리를 내질렀다. 악!!! 하고. 그 소리가 어디까지 들렸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1
 
 
스카이우스:(급히 뒤로 물러서서 침상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제서야 숨을 가다듬고 주위를 볼 여유가 생겼다. 초상화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고 나는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봤다.)
 
 
스카이우스:(숨을 아주 크게 들이켜고 내쉬면 그나마 진정이 되지만 근육이 놀라고 내장이 긴장해 기겁했던 신체의 여파로 허벅지부터 소름이 끼쳐 올라왔다. 얼었던 게 사르르 녹는 감각을 단전에서 삭이며 초상화를 막연히 바라봤다. 입가에서 낮은 탄식이 새면 미간이 구겨졌다. 이곳의 주인장이라는 그 녀석부터 떠오를 건 뭔지.) ……사랑하는 사람?
 
(그게 내가 모르는 나라니. 손을 들어 괜히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존나게 억울하잖냐…….
 
(짜 맞추어진 듯한 퍼즐들이 이제서야 모양새를 갖추었다. 이게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면 누구의 탓인가? 그도, 나도. 아마 탓할 게 운명밖에 없을 것이다.)
 
방해하는 기분이라고…….
 
 
스카이우스:(헝클어뜨린 머리를 한참 부여잡고 생각에 빠져 있다가,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금방이라도 한 줌의 재가 될 것 같은 몸이었다. 아마 그 정도로 으스러졌다면 세 번 죽고도 죽을 기회가 남았을 것이다. 돌아오지 않을 이면을 바라보는 동안 시간은 얼마큼 지났으려나. ……시간 감각은커녕, 이곳에 있으면 세상을 잊는 기분이었다.)
 
 
스카이우스:……이대로라면 청나라 땅은 앞바다 구경도 못 하겠네. (그러기로 했다. 몸을 일으켜서 창문을 열어 보았다.)
 
 
스카이우스:히야아아아악!!!
 
 
 
튀징그:저런.
 
모래 폭풍이 심해요.
 
인간의 영혼은 바깥에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겠어요.
 
 
스카이우스:마, 말 안 해도 안다고! (쾅! 창문을 닫았다. 목재에 이어진 유리가 부딪는 소리나 부속품의 금속음이 공간을 크게 울렸다.)
 
 
스카이우스:쳇, 감시군……. (기분은 더럽게 나쁘지만 그쪽에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날씨는…… 최악인가. 뭐, 사막이야 그게 일상이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혹시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오아시스 앞에서 물에 닿지도 못하고 바싹 타 죽어 있는 것 아닐까…… 나도 참, 풍부한 상상력이 이럴 땐 쓸모가 없었다. 들어맞지도 않을 거니까. 걸음을 옮겨서 옷장의 문도 열어 보았다.)
 
 
스카이우스:(예쁘구먼. 무심코 시선을 뺏겼다가도, 훌쩍 시간이 흘렀다는 걸 자각하고선 목을 간지럽히는 헛기침과 함께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사막에서 구르던 몸이라 역시 완전히 성한 곳이야 없었지만.) ……그 녀석, 어쩐지 걱정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착각이고 오만이려나. 좀처럼 씁쓸한 맛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라도 죽은 정인이 살아 돌아와 다시 내 앞에 있다면……) 아아! (아픈 곳도 없는데 돌연 탄식을 내뱉었다. 아니, 아프다면 머리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에 열이 들끓는 기분이니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문득 초상화로 시선이 향했던가.)
 
(……뭐, 그래도. 한 번쯤 웃어 줄 수는 있지 않을까. 저 그림처럼. 괜한 짓은 아닐까.)
 
 
스카이우스:(아무리 생각해도 오만이고 번지수 틀린 생각이다. 이게 다 내 설레발이면 어떡해? 유난히 이런 부분에선 뻔뻔하게 굴 수가 없었다. 인간의 감정이란 건 갓난쟁이 피부보다 여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 녀석 일단 인간이 아니잖아……? 썅, 몰라. 뒷머리를 벅벅 긁고는 다짜고짜 미닫이문을 걷어 열었다. 답답함에서 기인한, 화풀이에 가까운 태도였다.)
 
 
스카이우스:(방금 뭔가 떨어진 것 같은데. 소음의 출처를 찾아 옷장 근처로 다가갔다. 옷에는 손도 대지 않았으니까……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상식 정도는 있었다. 아, 어제는 너무 많이 손을 댔던가?)
 
 
스카이우스:(옷장을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앞뒤로 바닥을 살피기도 하고, 문을 열어 확인했다. 안쪽에서 난 소리 같기도 했는데. 이건가?) ……웬 로켓? (뚜껑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옷장은…….
 
 
스카이우스:(지금 보니 옷장이 깨끗하다. 최근에 지었거나, 지었을 때부터 건드리지도 않은 거겠지. 그때 돌연 귀를 잠식하는 비명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어깨를 떨었다. 후유증이 남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초상화를 한 번 흘끗 돌아본 뒤 다시 로켓 안의 사진에 고개를 돌렸다. 사진과 걸린 옷을 번갈아 보며 인상을 좁혔다.) 이건…… 녀석이 입을 만한 옷은 아닌 것 같은데. (어울린다고 해도 자기가 안 입을 것 같지.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무심코 웃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모르게 전통복의 옷깃을 잡아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분명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짜임새다.)
 
 
스카이우스:(불현듯 이질적인 기운이 스쳐 다시 그 모습을 확인했다. 반사적으로 초상화를 돌아봤다.)
 
 
스카이우스:
 
 
37
이성54 27 10
성공
 
(나를 닮은 사람, 아니, 내가 닮은 사람에게서 새어나오는 음성을 들었다.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다. 방금 그건 뭐지. 착각? 아니면 초상화는 피투성이인 채로 여전한가? 겪은 적 없던 일이다. ……내가 본 건.) ……설마, 전생?
 
(침착함을 유지하려 부단히도 애썼다.)
 
 
스카이우스:(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상황을 살피려 초상화를 향해 조금 더 다가갔다.)
 
 
이건…….
 
 
스카이우스:(구슬? 문득 든 감정은 의아함 반 불안함 반. 무심코 반쪽짜리 유리구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스카이우스:(떼어낼 수 있나?)
 
 
스카이우스:(챙겨 두기로 하고, 초상화를 멍하니 바라보다 멀어졌다. 옷장도 착실히 정돈하고 방을 나서기로 했다.)
 
 
스카이우스:(……모래 폭풍을 뚫고라도 나갈 생각이었는데, 방이 하나 더 있다. 무심하게 던진 시선이 책상 위에 가장 먼저 꽂혔다.)
 
 
스카이우스:(사과? 몇 개 정도 있지? 그리고 책상 주위에 더 눈에 띄는 것은 없나 살펴보았다.)
 
 
스카이우스:(시선을 떼고 그 다음으로 보이는 책꽂이를 살폈다.)
 
 
스카이우스:(필기구의 모양을 살폈다.)
 
(종류라든가. 아무래도 흰 괴물들이 쓰기보단 주인장의 것이 아닐까?)
 
 
스카이우스:고상하구먼……. (그런데 새 거? 미묘하네. 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살폈다.)
 
 
스카이우스:(어디서 구한 거지? 이런 건 이곳에선 구하기도 힘들 텐데. 손이 거뭇해지는 것도 차치하고 안쪽을 펼쳐 보았다.)
 
 
스카이우스:
 
 
25
언어(모국어)70 35 14
어려운 성공
 
 
스카이우스:(어깨를 으쓱이곤 책을 내려두었다. 이런 거에 취미라도 있는지…… 이곳엔 딱히 살릴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다시 제자리에 꽂아 두고 멍하니 세네카를 바라보다 시선을 병풍으로 옮겼다. 무엇이 그려져 있지?)
 
 
스카이우스:(고루한 낙원의 이야기군. 가장 마지막 장의 문구는 뭐라고 쓰인 건지 한 눈에 알 수는 없지만…… 살펴는 보기로 했다.)
 
 
 
99
관찰력45 22 9
실패
 
 
스카이우스:(미련 갖지 않고 응접실을 떠나기로 했다.)
 
 
어라.
 
 
스카이우스:음?
 
(안쪽에서 잠그는 밖에서 잠그는 문인지 문인지 살폈다.)
 
(안쪽에서 잠그는 문인지 밖에서 잠그는 문인지; 살폈다.)
 
 
스카이우스:(열쇠 어디 있는 거지? 병풍 뒤로 가 봤다.)
 
 
스카이우스:(쩬장)
 
(젠장.)
 
(미처 보지 못한 곳이 있는지 서가 위를 살펴 보았다.)
 
 
 
 
테오:…….대로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몸은 좀 괜찮나?
 
 
스카이우스:(마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다가, 곧 대답을 이었다.) 보다시피 멀쩡해.
 
 
테오:(처음 보였던 태도에 어울리지 않게 머뭇거리는 듯하다 가까이 다가서서 어깨를 조심스레 쥐어 본다. 그제서야 안도하는 기색이었던가.)
 
다행이야. 일어난 걸 알았으면 더 일찍 왔을 텐데.
 
 
스카이우스:(닿아 온 손을 밀어내지 않고 올려다보았다. 옅게 미소 같은 것을 입가에 띠고 시선을 곧게 들어올리나 한없이 어색했다. 결국 시선만큼은 피해 버리고 말았다.) ……걱정했냐?
 
 
테오:(어딘가 비뚜름한 미소가 입가에 퍼지는 것을 보면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낯이 일그러지려는 듯하더니 그대로 검게 걸친 몸을 끌어안는다. 고개를 파묻은 채 웃기라도 하는지 작게 바람 소리가 샌다.) 당연한 소리를.
 
웃음에 인색한 건 여전하네.
 
 
스카이우스:(소중한 것을 대하는 듯 아련함에 알 수 없는 감각이 들었다. 뱃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이젠 아주 대놓고 과거를 말하는 걸 보고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기분 나쁜 헛웃음은 아니었다.) 어젠 물으니 발뺌하더니.
 
(어제, 맞지? 시간의 흐름에 확인을 요하듯 말을 짧게 덧붙여 귓가에 속삭였고, 짧은 간격으로 말을 다시 이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처럼.) 방에 있던 그림 봤어.
 
 
테오:(짤막한 음성이 질문에 긍정하듯 흘러 지나가고 나면, 그림 이야기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한다. 그리곤 어깨 너머로, 초상화가 걸려 있던 방향으로 한번 눈길을 주는 듯하더니 미묘한 미소를 걸친 채 다시 눈을 맞춘다.) 실력 있는 화가를 불러 그려 놓았어.
 
실물에 비할 바는 못 되어도 꽤 아름답다 생각했는데, 마음에 들었나?
 
 
스카이우스:……마음에 든다는 거랑 별개의 이야기잖아. (마주친 시선을 피하지 않은 대신 뒤로 걸음을 물리고 약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 그림이 내지르던 비명이 떠올랐다.) 저 그림, 움직이던데? 아주 실감나게.
 
 
테오:움직인다니. (헛것이라도 보는 건가, 중얼거리며 손을 올려 한쪽으로만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카락 아래로 이마를 감싼다. 잠시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멈춰 있더니 곧 눈매를 좁히곤 들추었던 것을 도로 정돈해 준다.) 역시 오늘까지는 푹 쉬는 게 좋겠어.
 
 
스카이우스:(피부에 맞닿은 손을 치워내지 않았다. 머리가 정돈되어 드러난 한쪽 눈으로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한동안 이곳에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이곳이 뭐 하는 데인지라도 알아야겠어.) 거~ 아니, 잘못 본 게 아니라니까. 너는 움직이는 걸 한 번도 못 봤단 말이야?
 
넌 어떤지 몰라도 나는 이런 일들이 처음이걸랑. (여기에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화들짝 놀랐었다. 안 죽고 깨어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아주 굳센 태도를 고수했다.)
 
 
테오:(가만히 손길을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은근히 만족스러웠는지 은은한 미소가 짙어진다. 진심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이를 바라보듯. 시선이 눈매를 훑다가 콧대를 따라 슬며시 가라앉기도 하고, 다시 올라와 황혼이 담긴 홍채를 마주한다.) 저 그림에 그런 주문을 걸어 둔 기억은 없어. 말했다시피 실물보단 못하거든.
 
네가 지내던 곳과는 문화가 제법 달라 낯설겠지만, 전부 너를 위해 준비해 두었으니 궁금한 것이 있거든 언제든 물어.
 
 
스카이우스:(행동이 어쩐지 이상하리만큼 애틋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내가 정말 그가 애타게 찾고 있던 정인의 환생인가.) 문화의 차이보다도 차원의 차이에 가깝지 않냐? 궁금한 게 없을 수가 없지!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가도 휴, 짧게 숨을 가다듬어 내쉬었다.)
 
……그러면, 움직이지 않았다고 치자. (아무리 그래도 한마디조차 지지 않긴 했다. 당연했다. 내가 봤으니까! 금방이라도 다시 추궁하려던 마음을 누르고 나지막하게 다시 물었다.) ……저거, 나야? 아니면, 나랑 비슷한 그 무언가라든가.
 
 
테오:……. (역시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은 그쪽인가. 새로이 태어난 목숨에 더는 없는 것을 겹쳐 보았던가. 아주 오랜, 어느 먼 날의 기억을 더듬듯 침묵했다가 잔잔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래, 내가 사랑하는 이를 그려 놓았어. 너의 전생을.
 
(어느 정도는 짐작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으니, 자신에게도 미지수인 것은 그 사실을 인정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냐의 문제였다. 무어라 덧붙이지 않고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린다.)
 
 
스카이우스:(예상하고 있었다고 해도, 막상 인정하는 대답을 들으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청으로 향하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이런 시련이…… 그가 어떤 반응을 원하는진 모르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봐, 넌 괜찮은 거야?
 
말마따나 내가 환생한 존재라면 나는 엄연히 그 사람이 아니잖아. 내 말이 틀리냐?
 
 
테오:(무엇을 예상했든 그 질문만은 아니었을 테다. 되려 자신에게 괜찮냐 물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해 눈을 깜박이고는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같은 인간은 아니겠지, 그래…….
 
하지만 네가 품은 것이 같은 영혼이니 결국 달라지는 건 없어.
 
 
스카이우스:(괜찮다라, 지독하게 눈이 멀었구먼. 그렇다면 내가 그의 정인이었던 그이만큼 자신을 사랑해 줄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건가? 생각하는 걸 들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들었다.) 막연히 괜찮다는 건 이상해.
 
사랑은 너 혼자 하는 게 아니잖냐. 똑똑한 줄 알았는데, 조금 바보 같은 것도 같네.
 
 
테오:내게 받는 것만으론 부족, 한 건가.
 
(중얼거리며 시선을 돌리더니 한 번 더 어깨를 쥐어 쓰담아 주고는 품에서 놓아 준다.) 해가 저물고 있어. 날이 다시 밝기 전까지 모래 폭풍이 지나갈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테지. 이곳의 문들은, 내가 아니면 열리지 않으니까.
 
 
스카이우스:(무언가 말을 잘못 했던 건가. 그를 바라보는 눈가가 약하게 떨렸지만 금세 흥, 콧방귀를 뀌었다. 이렇게 직면시켜 놓으면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사랑이라는 무지막지한 감정에 발을 들이라니, 너무 어려운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잖아. 물론…… 그의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취향의 범주에 속하긴 했다.)
 
(품에 품어졌던 어깨가 편해지고 나니 곧 끙, 하고 무언가 참는 소리를 내다가 성내듯 말을 이었다.) ……아, 그러니까! 지금도 말이야. 너.
 
너무 잘해 주지 말라고. 지금이야 있겠지만, 언제 떠날지도 모르고. 너, 너야말로 언제 어떻게 내가 그 녀석이랑 다른 사람처럼 보일지 아냐?
 
(……그러니까, 반드시 실감날 때가 올 거란 말이야. 안 그러겠냐고……! 모든 것을 쉽게 내려놓고 이곳에 남을 수 없는 이유가 그거다. 말마따나 이 사막에서 버려지면 정말 삶이 끝장이다. 생각만 해도 어깨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테오:(어색하게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지며 부드럽지만 선명한 미소가 지어진다. 쿡쿡거리며 웃는 것도 같고, 저릿함 위에 몇 번이고 꺾이지도 않고 덧칠해진 연정 같기도 한 두 눈이 눈앞의 어린 영혼을 올곧게 향한다.) 그게 걱정이었나.
 
몇백 년을 기다렸는데, 그리 소원한다 한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이 자리에서 맹세라도 해 줄까.
 
인간의 기준으로 세었을 때 오늘로 정확히 오백팔십이 년 하고도 열흘째군. (턱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를 세듯 시선을 굴린다.)
 
 
스카이우스:(그가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을 땐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바라보다가, 곧 이어지는 말과 터무니없는 숫자를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그것까지 바라진 않아.
 
됐어! (가만히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도 어쩐지 시선이 마주친 것 같으면, 이제 빨리 가, 빨리. 중얼거리는 재촉을 하면서 등을 잡아 문 쪽으로 밀었다. 묘하게, 아니, 확실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테오:해가 뜨면 데리러 오도록 하지.
 
 
 
 
스카이우스:(그를 방 안에서 보내고 그대로 잠들었다. 쓰러졌던 이유는 모르지만 꽤 피곤했던 일인가 보구나. 그렇게 어느 순간 불현듯 깨어난 것 같은데, 눈을 두어 번 끔뻑이니 귓전에 들리는 소리가 섬뜩했다.)
 
(시선만 들어 창문을 보았다가, 보일 리 없는 사각이라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창문 쪽으로 다가가지만 막상 바깥을 내다 보진 않았다.)
 
 
스카이우스:……대체 뭐야? (일단 응접실로 나가보기로 했다. 이대로면 잠을 잘 수도, 불안해서 무언가를 할 수도 없어. 그 남자를 찾아 보자…….)
 
(아차, 그 전에. 잠들었던 방 안의 불을 켜 특별히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창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스카이우스:(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못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다, 알더라도 지금은 무슨 소리라도 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응접실로 도로 향했다.)
 
 
스카이우스:(이 소리를 듣고 있자 하니 못 참겠다. 이를 꽉 악물고 바람의 기척을 느꼈다. 어디서 새는 거지? 손바닥을 들어 느껴지는 찬기를 따라 이동했다.)
 
 
스카이우스:……
 
(낮에 데리러 오겠다 했는데.)
 
(에잇, 아주 작게 자신에게 트집 잡듯 탄식을 뱉고 직후에 면죄부를 주었다. 일탈을 감행하기로 했다. 조용히 열린 문을 몸으로 밀고 응접실에서 나왔다.)
 
(고개는 완전히 나왔으나 몸은 반쯤만 내밀어져 있다. 바깥 전방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스카이우스:(무언가 기척이 보이는 건 없는 것 같고…… 혹시 위쪽? 지붕인가? 조심스럽게 나와서 처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63
듣기50 25 10
실패
 
 
스카이우스:(아니네? 곧 연못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스카이우스:(천천히 다리 위를 걷다가, 눈에 띄니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뭐가 새겨져 있지?)
 
 
스카이우스:(그 안에 들어가서…… 나는 조심스럽게 연못 안을 들여다보았다. 무언가 있다면, 이곳에 있을 것만 같아서.)
 
(그리고 방문은 그만 열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열어놓고 간 이유가 있겠지. 침을 꼴깍 삼켜 넘겼다.)
 
 
…….
 
 
스카이우스:(사람? 인상이 확 굳었다. 사색이 되어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스카이우스:
 
 
53
관찰력45 22 9
실패
 
 
 
 
스카이우스:
 
 
18
이성54 27 10
어려운 성공
 
(뒤로 물러서면 그 시체들이 내 발목이라도 잡은 것처럼 넘어질 뻔했다. 그러나 겨우 중심을 잡고 급히 침착함을 되찾은 후에 다리를 건넜다. 누가 보면 얼빠진 모습일 것이다. 힉, 헉, 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스카이우스:(그걸 알 리가 있냐……! 소리를 빽 지를 뻔했지만 금세 숨을 가다듬고 이번엔 돌담 쪽으로 향했다. 이거 진짜 엿 먹이는 거 아니야?! 분명 묵는 거처가 있으렷다. 집주인. 두고 보자.)
 
 
…….
 
 
스카이우스:
 
 
59
정신60 30 12
성공
 
 
 
 
…….
 
 
스카이우스:……이게 무슨. (무심코 목소리를 흘렸다. 누군가 깨어 있다면 들었을지도 모르는 목소리. 기분 나쁜 기시감에 눈을 끔뻑이다 천천히 돌담을 따라 걸었고, 돌아 그 너머로 향했다.)
 
 
스카이우스:(무슨 소리지? 이곳에 있는 것들은 다 비밀스럽게 무언가 한다. 미친 거 아닌가? 이렇게 음산한 곳에서 어떻게 하루를 자라고…… 매일 쓰러져야 마땅하다. 지체할 것 없이 담벼락에서 후원으로 향하는 길을 확인했다.)
 
 
스카이우스:
 
 
7
은밀행동50 25 10
극단적 성공
 
 
스카이우스:
 
 
51
이성54 27 10
성공
 
(눈살이 찌푸려졌다. 날짐승? 이곳은 산도 없고 들도 없는데…… 하물며 먹을 거라곤 찾을 수도 없는 사막에 웬 짐승이 있나. ……사람을 먹나? 멀리서 저것이 멀어지기 전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
 
 
스카이우스:
 
 
2
이성54 27 10
극단적 성공
 
1
 
 
스카이우스:(이런 걸 본 적은 없어서 오히려 더 현실감이 들지 않았던 것도 같았다. 그저, 단전에서부터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헛구역질할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서 뒤로 돌아 돌담에 다시 숨어들었다. 그제서야 숨을 조금 가다듬고, 다시 돌아서 거실 앞쪽의 덤불 쪽으로 향했다.)
 
 
스카이우스:
 
 
90
정신60 30 12
실패
 
 
스카이우스:(뭐, 뭐야! 차마 소리를 지르진 못한 채 숨을 들이켰고 동그랗게 놀란 눈을 하고선 뒤로 멀어지려 했다.)
 
 
스카이우스:이런, 씹……. (그대로 몸을 돌려 냅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시선으로 나왔던 정방으로의 경로를 확인했다.)
 
……!
 
(공격적으로 밀쳐냈다.)
 
 
테오:……. 새끼들이 어딜 감히.
 
 
테오:(손에 묻은 혈흔이 더럽다는 듯 근처 수풀에 닦아 내고서야 똑바로 마주본다.) 괜찮아?
 
 
스카이우스:(누군지 직감하고 나서야 날세운 손길을 거두고 주먹을 쥐었다. 눈을 가렸기에 덩달아 꽉 감고 있었는데, 천천히 점멸하며 수복되는 시선을 마주하고 흘끗 홉떠 올려다보았다. 이 녀석, 역시 인간이 아니구나.) ……왜 이제 왔냐? (부루퉁한 목소리를 쏘아붙였다. 제법 서운한 듯한 태도로.)
 
 
테오:(그 한마디에, 걱정하던 것도 잊고 웃음을 터뜨린다. 다행히 너무 늦지는 않아 육안으로 확인하기에 다친 곳은 없어 보였으니.) 불렀다면 왔을 텐데.
 
보고 싶었어, 스카이. 이 늦은 시간에 바깥엔 무엇 하러.
 
 
스카이우스:이, 이……! 보고 싶었기는……! (으르렁대며 무턱대고 턱을 들어 시선을 올곶게 맞추었다. 이는 드러내지 않으나 콧등을 퍽 찌푸린 채였다. 큰 목소리는 나지 않게 또박또박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너만 이름 알면 다냐? 나한텐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고서. 어이. 무엇보다 내가 깨고 싶어서 깼는지부터 물어봐라. 자다가 말이야, 괴상한 소리가 들렸거든.
 
 
테오:이름은, ……. (일러 주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뒷말을 삼키듯 중얼거리며 혼자 기억을 되짚는 시늉을 했다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구는 태도는, 익숙하진 않아도 오히려 마음에 들었을까. 짐승을 달래듯 반 뼘 낮은 곳에 위치한 둥근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호응을 해 준다.) 테오라 불러. 달밤에 튀징그들이 소란이라도 피웠나?
 
 
스카이우스:……그래, 테오. (이름을 부르자마자 뭔가 찜찜한 기운이 들었다. 그가 내 머리를 쓸어내리고 있는데도 어색하지 않았다. 되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고 편안해진 기운에서 벗어난 것도 금방이었다. 재차 시선을 맞붙였다.) 튀징근지 튀김 오징언지 그건 뭔지도 모르겠고. 저기 문 너만 열 수 있다고 했잖아? (처음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성깔을 드러내는 게 성격답긴 했지만 평소보다 날이 서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안 하면 혼란에 잠겨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뛰쳐나가고 싶을 것만 같았다. 긴장이 풀리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하고선 있는 그대로 다급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말의 단락이 맞지 않고, 제대로 생각도 정돈하지 못하는 게 티가 났을 것이다.)
 
그게, 이상한 소리가 나와서 나왔더니 문이 열려 있었어. 일부러 열어 놓고 간 거냐? 괴물, 시체, 이곳저곳에서…… 대체 뭐야?
 
 
테오:(평소대로의 은은한 미소를 걸치고 있던 것이 오래 가지 못했다. 말의 내용보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음성이 이따금씩 떨려 와서. 네가 울상을 짓고 있으니까. 마땅한 반응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두 팔을 어깨에 두르고, 그대로 품에 묻어 고요하게 가라앉은 낯을 숨긴다.) 네가 잘 자고 있는지 걱정되어 잠시 얼굴을 보고 나온다는 게 그만. 일부러 열어 두었던 건 아니야. (딱 그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를 내어 잔잔하게 말을 잇는다.)
 
저것들은, 밤이 되면 종종 나타나는데 그동안은 튀징그들의 사냥감밖에 되지 못한 탓에 문제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어. 내 불찰이다. 시체는, ……?
 
시체를 보았다고.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한다.) 후조방 문도 열려 있었나?
 
 
스카이우스:아무리 그래도 그렇! 지……. (또 한 번 그에게 등쌀을 대려다 당기는 힘에 당황하며 고개를 폭 묻었다. 절로 어깨에 기댄 폼이 되어선 느리게 그의 옷깃 양쪽을 손가락에 걸어 쥐게 되었더라. 이상하게도 조금은 진정되는 듯한 기분이 들어 호흡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내쉬었다.) ……하, 그래, 시체. 방문까진 모르겠어. 바로 도망쳤다고. 넌 대체 어디 있다 왔길래 문이 열려 있었냐는 질문을 하는 거냐?
 
 
테오:(등에 얹은 손은 여전히 잘못 힘을 주면 깨지기라도 할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다. 그 와중에도 작게나마 안겨 오는 것이 기꺼워 입매가 잠시 호선을 그렸던가.) 그 문은 열려 있을 리가 없고, 그곳 외에 시체라고는 짐작 가는 바가 없으니. ……. 앉아서 이야기할까.
 
(어딜 보는 것인지, 시선은 눈앞의 풍경을 넘어 어느 과거의 아득한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찬찬히 걸음을 뻗어 정방의 거실에 들어서면, 그제야 안고 있던 허리를 놓고 먼저 의자를 빼어 준다.)
 
 
스카이우스:(거기에도 시체가 있는 거냐, 그리 물음하려다 삼켰다. 천천히 하나하나 따져 볼 작정이었다. 이렇게 난폭한 생각을 하면서 엉성하게 안긴 채로 걸어가는 폼이 우습기 짝이 없겠지. 뭐, 새삼스럽지만 본디 인간은 나약하다. 쉽게 부서지고 스러지는 존재다. 그러니까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다면 조금은 의지해도 될 일이었다. 지금만큼은.)
 
(쭈뼛쭈뼛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의자에 털썩 앉은 다음 고개를 테이블 위에 툭 묻었다. 어떤 공간에 들어왔다는 안정감에 풀어져 힘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테이블 위에 소리가 묻혀 웅얼대며 흩어졌다.) 빌어먹을…… 이거고 저거고 다 이상한 집이잖냐……. 네가 아까처럼 근처에 없으면 난 금방 죽어 버릴 거라고.
 
 
테오:(테이블 위로 엎어지는 것을 보고는 자신 역시 맞은편에 자리 잡는다. 네가 이리 구는 것은, 이번 생의 너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일까, 처음 보았을 때도 본래는 이런 면이 있었을까.)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네가 싫어하는 것들을 전부 흩어 놓든, 네가 원하는 곳으로 둥지를 옮기든 하자. (당연한 이야기를 하듯 미래를 기약하는 목소리는 다정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으려나……. 내게 더 궁금한 건 없어?
 
 
스카이우스:둥지는 무슨, 새도 아니고. 이렇게 험악한 둥지는 또 없을 거다. (여태껏 죽은 정인의 환생을 기다렸다면 어쩐지 그에 대한 질문은 금물일 것만 같았다. 제법 막간의 배려라고 구태여 말을 꺼내지 않았고 다른 화젯거리를 꺼내기로 했다. 설마 여긴 지뢰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노을이 잠긴 눈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잿빛으로 덮힌 머리통 속에서 무슨 고민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알 리도 없으니 이젠 대놓고 칭얼거리듯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볼이 꾹 눌린 채로 말을 이어갔다.) ……그, 뭐야. 이런 질문 좀 웃기긴 하지만…… 밤마다 어딜 그렇게 나가는 거냐?
 
 
테오:(경계를 완전히 풀어 버리기로 한 건가. 한쪽 볼이 테이블에 눌려 살집이 둥글게 튀어나온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촛불 하나 켜 두지 않았는데 어둠에 잡아먹히지도 않고 타오르는 홍채가 잠시 반짝거렸고, 손을 뻗어 연분홍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준다.) 네가 와 주었으니, 하던 일을 마무리지어야 해서. 외출하지 않을 때는 주로 저곳에 있어. (그리 말하며 고개를 돌려 스카이우스가 묵었던 건물 건너편의 서상방을 바라본다.)
 
 
스카이우스:그렇구먼. (그가 머리칼을 넘기는 것과 동시에 익숙해진 어둠 속에서 순간적으로 양쪽 시선이 마주쳤는데도 조금 몽롱한 것을 보니 난 지금 잠에 젖은 것도 같다 느꼈다. 귓바퀴에 닿는 손길에 고개를 불쑥 들어 양손으로 턱을 괴었다. 급격히 몰려온 피로에 하품을 작게 하고는 입맛을 두어 번 다셨다. 눈가에 오밀조밀 눈물이 고였다. 상황이 괜찮아지니 허기가 지고, 졸려지고…… 또,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됐다. 인간의 몸은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와서? 저기서 뭘 하길래?
 
 
테오:(눈꺼풀이 느릿하게 오르내리는 것, 입술을 벌렸다가 모으는 것,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눈에 담더니 허리를 펴고 등받이에 기대어 앉는다.) 저곳에서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그래.
 
……. 네 영혼은 지금 여러 조각으로 찢겨 있어. 전생의 것이 온전히 새로 태어난 게 아니라, 그 조각들 중 가장 큰 것이 네게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 너를 되찾기 위해 그 원흉이 되었던 존재와 거래를 했는데, (가늘어진 동공이 해묵은 증오를 품고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가, 옅게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갖다 바치던 작업을 정리하는 중이지.
 
 
스카이우스:(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꽤 놀란 낯을 지었다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아 턱을 왼쪽으로 괴었다. 훤히 보이는 한쪽 시야마저 분홍빛 커튼에 가려졌고, 나는 그것을 빈손으로 슬쩍 밀어 치웠다. 그러는 동안 그의 눈동자에 빛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생각이 많아졌다. 머리칼을 정돈했던 손가락의 말단으로 테이블 위를 번갈아 두드리며 손장난을 했다.)
 
처음 보는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너…… (영혼이 갈라져 있다라. 몇 번은 죽었다 태어났어도 이상하지 않단 소리일까. 그렇다면, 영원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 혼자인 것 아닌가? 미약하게 흘겨보다가 나는 곧 냉소를 머금었다. 충분히 상처를 줄 만한 말이었다. 다만, 만일 그가 환상에 빠져 있다면 손을 잡아 꺼내 주고 싶은 마음. 그런 것이 조금은 들었다.) 정말 그 녀석 사랑한 건 맞냐?
 
 
테오:……. (깜빡이지도 못한 두 눈이 주춤한다. 사랑을 소원했던 그 입술로, 자신을 빼다 박은 눈을 하고. 차라리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해 대용품이 필요하다 요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을. 너는 어떤 대답을 바라고 그리도 날을 세워 내미는 걸까. 시선을 떨구며 자연스럽게 암흑에 파묻혀, 입은 다시 미소 짓는다.) 나는 사랑했어.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만둘 수 있는 날이 오진 않겠지. 악마는 오래 살거든.
 
 
스카이우스:(악마라는 단어에 손장난을 하던 움직임이 멈추었다. 악마의 사랑을 받은 인간이라…… 책에서나 볼 법한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참,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악마가 사랑이라. (작게 중얼거렸다. 허울 좋은 치레구나. 아까와 닮은 냉소가 찬찬히 입가에서 떨어지면 무언가 고민을 마친 사람처럼 심호흡을 한차례 했다.)
 
……이봐. (그리고 시선을 피해 허공을 응시했다. 응접실 내부에서도 아주 어두운 곳을. 그리고 넌지시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는다면 무슨 득이 되냐?
 
 
테오:(감고 있던 눈을 느릿하게 뜬다. 참 예상 범주 밖의 질문들을 잘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언제나 악마를 필요로 했다. 원하는 것이 있어 불러내었고, 소원을 빌고자 목숨을 바쳤다. 인간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해, 술수와 달콤한 꾀임으로 아웅하는 것이 아닌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은 십수 세기를 보낼 동안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결국 내놓을 줄 아는 것은 기발하지 못하다.)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 줄게. 곁에만 남아 준다면, 무어든.
 
 
스카이우스:(대답을 듣고 가만 있다가, 곧 생각을 포기한 듯 썅, 작게 욕지거리를 뇌까리며 뒷머리를 벅벅 헝클어뜨렸다. 그리고 느릿하게 입을 뗐다.) 그렇게 말하면……! 꼭……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뭐라도 마주 맹세해야 할 것 같잖아. (솔직히 이 정도면 이 존재와 이 존재가 하는 사랑에 대해 믿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나는 너무 의심이 많고, 감정에 인색하며…… 쓸데없이 감이 좋다. 나는 다시 고개를 푹 숙여 버리고 말았다.) ……몰라.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자꾸 몸을 배배 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만이 아니라 나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이란 걸 깨달았던 건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였다.) ……아, 아까 밀친 건 미안하다. 거, 도와주러 왔는데, 괜히.
 
 
테오:그래, 당장 대답해 줄 필요는 없으니. (선 그어 거절하지 않는 이상 다급할 건 없었다. 기다리는 데에는 도가 텄지. 뭘 그리 꼬물거리나 싶다가도 결국 마냥 귀여워 보인 탓에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들어 올라간 입꼬리를 문지른다.) 내가 더 일찍이 너를 찾았다면 애초 그렇게 놀랄 일도 없었겠지. ……. 아, 생각해 보니 밀쳐진 곳에 멍이 든 것 같기는 한데. 제법 아프구나.
 
 
스카이우스:(광대 즈음을 손가락등으로 괴면 시선이 절로 방의 가장자리로 추락했다. 인상을 부러 찌푸렸다.) ……뭐? 엄살 피우지 마.
 
그리고.
 
너는 안 먹는다고 뭐 달라지는 거 없겠지만 나는 엄청 배고프거든? 아까도 딸기 먹으려다 뒈질 뻔했다. ……저거 먹어도 되는 거긴 하냐? (뺨을 괴고 있던 손을 턱으로 옮기고 대답을 하든 말든 중얼중얼거렸다.)
 
 
테오:설마 딸기를 따 먹으려다……. (눈웃음이 짙어지고, 손에 가려진 입술이 움찔거리나 싶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쿡쿡거리며 한참을 웃다가 어깨가 떨리던 것이 멎을 즈음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 먹어서 나쁠 건 없다만.
 
사과하지. 인간과 이리 오랜 시간을 보내 본 지가 좀 되어서.
 
(유유히 덤불 쪽으로 멀어지더니 얼마 되지 않아 옷소매에 딸기를 한아름 쌓아서 돌아온다.)
 
 
스카이우스:어이!!! (한참 웃는 그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며 버럭 성부터 냈다. 멋쩍어져서였다. 벌떡 일으켠 몸에 부딪은 의자가 뒤로 넘어지지나 않아서 다행이지. 빌어먹을, 작게 읊조리며 나가는 걸 빤히 지켜보다가도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땐 얌전히 앉아 있었다. 한껏 쫄아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라 바깥에 다시 나갈 순 없었다. 홉뜬 눈이 그의 움직임을 쫓았다.) 먹어서 나쁠 건 없다고 말하니까 엄청나게 의심되는 거 아냐?
 
 
테오:(따지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딸기들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고는 하나를 소매에 문질러 닦는다.) 내가 네 몸에 해가 되는 것을 먹게 둘 것 같아? (잘 익어 붉게 물든 열매가 그를 꼭 닮아 있다 생각하며 꼭지를 떼어 한쪽으로 밀어 둔 뒤에야 손에 들린 것을 받아먹으라는 듯 내민다.) 자.
 
 
스카이우스:(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곧 납득했다. 생각이 그대로 표정으로 드러나는 듯 낯이 풀어졌다.) 그거야 또 그렇네. (시선은 맞추지 않았지만 허리를 앞으로 숙여 입을 벌렸다. 아, 하는 소리가 반사적으로 목구멍에서 나왔다. 입을 벌리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맞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데에선 또 지나치게 뻔뻔하게 굴었다. 배고프면 주는 대로 먹어야 하지 않겠나. 거의 낚아채 가듯 딸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손가락은 물지 않았겠지.)
 
 
테오:(손끝에 스친 입술이 간지러웠고, 우물거릴 때마다 볼록 튀어나오는 볼이 사랑스러워 두 눈을 곱게 휜다. 보기 좋아 심어 두기를 잘했다며 자찬하고는 남은 딸기들도 하나씩 먹기 좋게 준비해 그 앞에 쌓아 놓는다. 그땐 먹으라고 차려 놓아도 마지못해 한 입 물고 말더니……. 시선이 낮아지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던 것도 같다.) 더 먹고 싶은 음식은 없고?
 
 
스카이우스:(그가 무어라 중얼거리는지, 내게 향한 것이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생리적인 식욕을 충족시키는 게 먼저였을지도. 눈 앞에 놓인 것은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쌓인 딸기들을 어느 정도 먹고 나니 콧김을 한 번 킁. 이내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뭐든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하네, 이 녀석은……) 지금은 물 한 잔이면 될 거 같은데…… 앞으로 먹을 걱정도 없는 거 맞겠지? 음식으로 눈치 보는 거 제일 싫어한다고. (나도 모르게 미래를 말해 버려 아차 싶었는데, 당장 이곳에서 뛰쳐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태연한 척했다.)
 
 
테오:(턱을 괴고 열심히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인간들은, 먹는 것만 보아도 배부르다고 하던가. 배부르다는 감각이 무언지 알 수는 없어도,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기억해 두지. 원한다면 너를 위한 식당을 차려 줄 수도, 가장 희귀한 요리를 구해다 줄 수도 있어. 음. 저택에 주방장을 따로 고용하는 쪽이 편이할지도 모르겠군. (진지하게 고민하는 낯을 한 채 양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가 어디선가 물 한 잔을 꺼내 내놓는다. 생긴 것이 처음 주었던 것과 동일하다.)
 
 
스카이우스:……그 정도로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거창한 말을 들으며 조심스럽게 흘끗거렸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 정도로 대해 줄 정도라면 대단한 사랑이구먼. 연모의 대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크게 알 바가 아니다. 얼굴만 닮았으면 다인가. 역시 그가 내게 질린다고 생각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하면 크게 정을 주고 싶지 않은 기분이 반, 그가 궁금해지는 기분도 반. 이래서 사랑이랑 닮은 감정은 감정 중에서도 영…… 제일 벅찬 존재였다.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는 컵을 받으면서 마저 말을 이었다.) 맛있고, 대단한 게 아니어도…… 같이 즐겁게 먹어 주는 이가 있으면 행복한 거라고. (너무 당연하기도 하면서, 그가 모를 법한 기분을 말로 설명했다.)
 
 
테오:……. 그런가. 같이 즐겁게 먹어 준다라. (사뭇 곤란한 낯을 짓는다. 인간의 음식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얼 먹어도 '맛'에 감흥을 크게 느끼지 못할 뿐더러 많이 먹어서 좋은 꼴을 못 봤으니. 하지만 그걸로 네가 기뻐한다면 적당히 섭취하고 게워내는 정도는 간간이 할 만하지 않을까. 태평한 생각을 마치고는 눈치를 보는 듯한 시선을 마주한다.) 노력해 보지.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그의 옆에서 손을 뻗는다.) 슬슬 돌아갈까. 바람이 찬데.
 
 
스카이우스:(당연하게도 그의 머리통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리 없었다. 눈에 비치는 것도 자세히 살필 수 없었다. 나에게 그 정도의 통찰력은 없다. 그러나 저 반응으로 보아 확실한 건 사고회로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 정도겠지. 쩝, 괜히 입맛을 다셨다. 어쩔 방법은 없지만 왠지 그가 조금 행복한 것처럼 보이게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했다. 물론, 욕심이었다.) 그러든가. (별생각 없는 것처럼 말을 받아치고는 몸을 일으켰다. 사실은 머릿속을 떠 다니는 상념이 넘쳐 흘러서 오히려 여과해 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건데도. ……이걸 잡아, 말아? 손을 빤히 보다가 자기가 먼저 잡아 주는 듯이 홱 감아챈 뒤에 테이블에 빈 손을 지탱하고 몸을 일으켰다. 잡아 주는 것에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그에 비해 피 한 방울 안 흐를 것 같은 그의 차가운 손을 잡은 내 손은 깨나 따뜻했다. 뭉근한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마저 자야겠다. 여기 있으니까 시간 감각도 젬병이 됐는데, 그래도 졸릴 땐 자야지.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네. (마신 컵을 한쪽에 치워 두고선 잡은 손을 단단히 붙들어 맸다.) 잘 먹었다.
 
 
테오:천만에. (손을 꽉 맞잡아 주면 기쁜 낯으로 웃는다. 항상 걸치고 있는 은은한 미소보다 조금 더 투명하고 또렷한 것이, 좁혀진 눈매 사이로 노을이 반짝인 것도 같다. 첫날 이리저리 긁혀 있던 피부가 아물어 가는 자리를 조심스레 엄지로 쓸어 내며 그에게 보폭을 맞춰 느긋하게 정원을 거닌다. 갈수록 생각이 많아 보이는 것이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 짐작은 잘 가지 않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라 여겨지니 충분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셈이었다. 처음부터 소란스러웠던 적 없는 것처럼 고요한 연못을 지나쳐 동상방에 다다르면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라는 듯 자리를 내어 준다.)
 
 
스카이우스:(오늘은 잠들자. 잠들고 딱 내일이 돌아오면 그때 많은 걸 생각하도록 하자. 현기증까지 이는 머리를 잠시 내려놓기로 했으리라. 동상방 응접실 앞에 도착하면 손을 놓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느리게 시선을 맞추고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문지방에 발을 딱 붙이고 미닫이문을 기대듯 쥐었다. 몸을 반 정도 숨긴 채로 이렇게 말을 이었다.) 해 뜨면 봐. 그 전까지는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 아까처럼 깨 버리면 괴물이고 뭐고 다 쥐어 패러 가고 싶어질 거 같으니까…… 나 눈 돌면 큰일 나거든?
 
 
테오:(온기가 머물다 떠난 자리를 빤히 내려다보며 빈손을 쥐었다 편다. 조금 더 느리게 걸을걸 그랬나. 발걸음이 멈춘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들고 이야기를 듣더니 가볍게 웃음 소리를 낸다.)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나를 불러. 그것들을 쥐어 패다가 네 손에 상처 하나라도 더 나면 내 눈이 돌아갈 것 같구나.
 
이번에는 문을 단단히 닫아 놓을 테니 걱정 말고.
 
그나저나……. 함께 누울까 했더니 제안하기도 전에 거절당한 모양이야. (턱끝을 톡톡 두드리며 아쉽다는 표정을 그려 냈다가 여상한 눈웃음으로 돌아온다.) 해가 뜨면 데리러 오지.
 
 
스카이우스:더럽게 든든하구먼. (말에 비소가 섞여 들었다. 그 때문에 이런 환경에 놓이고, 그 덕분에 목숨을 보장받는다니 빌어먹게 다정하구나. 그리고 이어져 들려온 말에 눈썹을 들썩였다.) 같이? (곧 반쯤 놀리는 듯한 눈웃음을 지었다. 눈매가 접힐 정도로.) 언젠가는.
 
그럼 아침에 보자고~ 테오. (손끝만 느리게 흔들어 보인 뒤엔 냉큼 몸을 문짝 뒤로 숨겼다. 저 녀석…… 조금, 귀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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