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뜩 눈을 뜨면 가까운 거리에서 쿠로오의 얼굴이 보입니다.
 
코즈메 켄마: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유령이 입은 교복이 어딘가 새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명찰. 명찰에 이름이 적혀있네요.
 
黒尾 鉄朗...
 
쿠로오, 인가요?
 
코즈메 켄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교실 안에서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학생들이 의미없이 의자를 끄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옵니다.
 
지금은 여전히 수업 시간입니다.
 
여전히라는 표현이 어울릴까요?
 
정정하자면, 지금은 다시 수업 시간입니다.
 
쿠로오 테츠로:나가는 것 까지만 도와달라구, 코즈메 군~ 성불까지 도와달라 하진 않지 않습니까.
오야, 설마 코즈메 군 그새 쿠로오 씨한테 정이라도 들어버린 건가? 졸업할 때까지 줄곧 같이 다녀달란 말로 들어도 되겠지?
 
눈 앞의 쿠로오는 고작 몇 시간 전에 당신에게 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어냅니다.
 
코즈메 켄마:(방금까지, 그 검은 거. 버스. 분명 들은 적 있던 말들. 교실 안은 이렇게나 태평한데, 쿵쾅거리는 심장이 기이한 현상들에 아직도 진정할 줄을 모른다. 그 중 가장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건, 쿠로오 테츠로. 학교의 지박령. 눈앞의 너.)
....... (여태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다가 하루만에 이리도 휘말린 것이 너와 상관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네가 원인일 게 분명해. 대꾸도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시선을 교과서에 고정시킨다.)
 
그런데, 마냥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만 같았던 쿠로오의 표정이 천천히 어두워집니다.
 
곧 낙심한 기색까지 보이더니,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깊은 한숨을 푹 내쉽니다.
 
잘만 말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말이에요.
 
는 전에 하지 않았던 혼잣말을 합니다.
 
쿠로오는 전에 하지 않았던 혼잣말을 합니다.
 
쿠로오 테츠로:아니, 왜 또 여기야…….
 
결국엔 어딘가 체념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코즈메 켄마:(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갑자기 조용해진 것도,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문장도 신경 쓰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네게는 물을 수 없다. 조심해야 할 게 있었으면 진작 말해 줬어야지. 눈을 질끈 감고 생각을 정리하면, 어떻게 보아도 이건 지독한 악몽이 아닌 이상 시간 속에 갇힌 모양새다. 전에 했던 게임 중 비슷한 소재로 스토리가 진행되었던 건 본 적 있지만 설마 현실에서 맞닥뜨릴 줄이야.) 타임 루프......
 
쿠로오 테츠로:무리하게 나가면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고 얘기했잖아. 안 했었나?
적어도 이번엔 성공할 줄 알았는데.
 
쿠로오는 그렇게 짧고도 불친절하게 루프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그러고서 당신을 빤히 보더니 '나가는 건 포기하고 학교에서 안전하게 지낼 방법이나 찾아야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코즈메 켄마:(그게 이런 뜻일 줄은 몰랐지. 목구멍까지 차오른 음절들을 삼킨다. 이전까지도 내가 함께 돌아왔는지, 그땐 다른 사람이었는지. 학교 안에서 안전해야 한다는 건 또 무슨 뜻인지. 너를 돕지 않으면 나는 시간 속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건지. 아니, 그래야만 한다. 필사적으로 무시하고 얌전히 귀가하면 괜찮을 거야. 그리 생각하며 잠시 마주쳤던 시선을 떼어낸다.)
 
쿠로오 테츠로:왜? 내 탓인 것 같아서? (책상을 손으로 짚고 고개를 기울였다. 새까만 눈동자가 노란 동공에 가 닿았다.) 쿠로오 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억울한데.
이걸 끊을 수 있었음 진작 끊었겠지요~ (손을 들고 과장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안 나가면 루프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말고 있어도 괜찮아. 그러니까...
여기서 나갈 생각 안 들도록,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라, 코즈메 군.
 
코즈메 켄마:(태도가 달라졌어도 말 많고 시끄러운 것만큼은 여전하다. 그리고, 네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제는 짜증 나는 게 아니라 귓가가 웅웅 울려서. 자칫 말리기라도 하면 정말 위험해질 것 같아서. 네가 안 나가면 루프는 일어나지 않는다라. 분명 그리 되길 바라고 있음에도 네 입에서 나오니 불안이 덧입혀진다. 펜을 들어 노트에 끄적인다.)
('수업 중이잖아. 조용히 해.')
 
쿠로오 테츠로:(책상을 양손으로 짚고서 가만히 시야를 가렸다. 생글생글 웃는 낯은 그대로였으나, 낯에 어린 검은 것은 결코 무시할 만큼 옅지 못했으리라. 글을 읽지 못한 척, 아래가 비치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눌러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응? 코즈메 군.
 
코즈메 켄마:....... (또 이런다. 눈을 돌리면 시선을 따라오고, 시선을 피하면 시야를 가득 채워 덮어 버린다. 아예 눈을 감아 버리지 않고서는 너를 볼 수밖에 없게끔. 두려움이 깃든 동공이 흔들리다가, 결국 네 것을 비춘다. '이번에는 또 뭘 시키려고.' 퍽 휘갈긴 글씨에는 날이 서 있다.)
 
쿠로오 테츠로:(하하. 터져나오는 웃음은 마른 것이다. 둥글게 휜 눈매는 어떠한 것도 담고 있지 않다. 이전보다 날이 선 글씨를 한참이고 읽다 허리를 세우며 손을 거두었다.) 아까, 아. 몇 분 전인가? 아니다. 몇 분 후? 기억이 애매해서.
 
그리 말하며 쿠로오는 본론을 꺼내듭니다.
 
이번엔 왜, 고작 몇 시간 전에 스치듯 이야기했던 그거 있잖아요.
 
제령되게 생겼다며 툴툴거렸던 이야기.
 
그걸 함께 제거해달라는 부탁입니다.
 
혼자서는 힘들다나 뭐라나, 아무튼 여러 가지를 덧붙이면서요.
 
코즈메 켄마:혼자서는 못 하는 게 참 많네, 지박령이라는 거. (코앞의 네게만 들릴 정도로. 어쩌면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고는 입을 꾹 다문다. '제령 당하면 되겠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적었던 그대로, 이번에는 조금 더 진심을 담아. 진심인가......? 움직이던 중 잠시 멈춘 펜촉이 속도를 늦춰 문장을 완성한다. 별것 아닐 것이다. 쓸데없는 정이 든 거겠지. 나를 위험하게 만드는 존재에게. 찝찝함을, 네가 초래한 불안으로 치부했다.)
 
쿠로오 테츠로:지박령이라는 게 그렇지요, 뭐. (스치듯 문장을 읽었음에도 어떠한 내색도 보이지 않았다. 뭐, 그야 그렇지요. 생판 남이 이렇게 귀찮게 구는데. 까지 생각을 잇다 종소리가 울리는 스피커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번은 저번보다 조금 늦네. 따위의 감상을 내놓고서 펜의 끝을 쥐었다.) 쿠로오 씨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 줄 알고.
 
코즈메 켄마:(온점을 찍은 손이 굳는다. 이제 수업이 끝났으니 가방을 챙겨 집에 가면 된다. 이런 나한테밖에 안 보이는 유령 정도. 남들처럼 안 보이는 척하고 걸어가면 된다. 가뜩이나 너 때문에 이런 일에 휘말렸는데 더 위험해지기 전에 역시 없애 버리는 쪽이, ....... 네가 없는 상상을 했다. 분명 쾌적하겠지. 고요할 거야. 다시 전학을 갈 필요도 없을 거고. 쓸데없이 수업 중에 떠드는 유령도, 학교가 끝나고 교문까지 졸졸 쫓아와 한 걸음 뻗기를 겁내는 유령도, 하굣길까지 끈질기게 따라와 나란히 걷는 유령도, 자신은 꽉 찬 버스 안에서도 답답하지 않다며 으스대는 유령도. 그래. 없어.)
(어쩐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싫었다. 결국 동정이라도 해 버린 건지. 쓸데없는 정이 쌓여만 가는 건지. 눈매를 찡그리고 펜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하면 네가 안전해지는데.
 
쿠로오 테츠로:(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린다. 결국 네가 그 대답을 해줄 것을 알았다는 것처럼. 그런 것처럼.)
간단해. 오컬트 부 부장이 멋대로 설치해둔 제령 트랩 해체를 도와줘. 혼자서는 역시 잘 안 되어서 말입니다. 닿자마자 황천길 가는 줄 알았다니까. 두 번 다시 코즈메 군을 만나지 못할 뻔 했어요~
 
코즈메 켄마:(옅은 한숨과 함께 다른 학생들이 전부 빠져나간 교실 안에서 가방을 챙기고 어깨에 멘다.) 알았어.
 
쿠로오 테츠로:(빙긋 웃고 몸을 돌린다.) 앞장 설게.
 
코즈메 켄마:응. (이번에는 군말 없이, 몰래 빠져나갈 생각도 없이 조용히 뒤를 따른다.)
 
.
 
쿠로오가 처음으로 당신을 데려가는 곳은 음악실입니다.
 
여기에 대체 뭐가 있다는 걸까요?
 
별다른 기척이나 기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음악실 내부를 제대로 둘러보기도 전, 쿠로오는 뜬금없이 피아노 앞으로 걸어가 건반을 가볍게 두드립니다.
 
코즈메 켄마:? (피아노 치는 유령이라니. 상당히 전형적이네. 그런 생각이나 하며 가방을 근처 의자에 내려놓는다.) 트랩이 여기에 있어?
 
딱히 연주하는 건 아니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빤히 쳐다보고 있어도 피아노 자체에서는 별 느낌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거예요.
 
당신처럼 쿠로오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이 어딘가에서 느껴진다는 겁니다.
 
심지어 하나가 아닙니다.
 
대여섯 개는 되는 시선이 쿠로오에게로 꽂히는 게 느껴집니다.
 
쿠로오 테츠로:(의미없이 긴 손가락으로 건반을 꾹 눌러 음을 내고서 입술을 열었다.) 저거 봐.
 
쿠로오는 칠판의 위를 눈짓합니다.
 
코즈메 켄마:(자신이 받는 시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름 끼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칠판 위쪽을 쳐다본다.)
 
그곳을 쳐다보면, 칠판의 위에 고전 음악가의 초상화가 두 점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코즈메 켄마:
교육
기준치: 50/25/10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그러니까, 하나는 바흐고, 하나는...
 
...음. 모르겠네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되었습니다.
 
프린팅된 초상화니까 원래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들의 시선은 정확히 왼쪽 아래에 위치한 쿠로오에게 꽂혀있습니다.
 
칠판 위의 초상화뿐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면 벽면에 걸린 네 점의 초상화 역시 전부.
 
코즈메 켄마:
SAN Roll
기준치: 66/33/13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코즈메 켄마:으. 기분 나빠. (천천히 자리에서 돌며 초상화들을 하나씩 둘러본다.)
 
쿠로오 테츠로:기분 나쁘지? 저걸로 끝나는 게 아니랍니다. (피아노 건반을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 밤마다 나와서 이 쿠로오 씨를 쫓아다닌단 말이야.
 
밖으로 나온다니…그림이 액자 밖으로요?
 
제령'술'치고 꽤 물리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코즈메 켄마:(그게 말이 돼? 라고 물으려다가, 이미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잔뜩 일어난 것을 생각하고 입을 다문다.)
찢어 버리기라도 하면 되는 건가.
 
쿠로오 테츠로:그런 방법으로? 찢는다고 해결 되는 거면 쿠로오 씨가 하지 않았을까, 코즈메 군? (하얀 건반 하나를 꾹, 눌러 소리를 울리며 대답했다.)
음악실 안에 저것들이 밤마다 형체를 지니게 하는 주문이 있을 거야. 무작정 찾으려고 하면 낮에도 튀어나와 제지하니, 시선을 끌 수 밖에 없지.
 
코즈메 켄마:(어깨를 으쓱인다.) 아까 주문도 고작 등 두드리는 거였잖아.
 
쿠로오 테츠로:(짧게 웃는다.) 그건 그래. 결국 어떠한 의미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뭐, 포기해선 안 되는 거겠지.
아무튼, 피아노를 쳐서 시선을 끌 테니 그 사이에 주문을 찾아줘.
믿을게, 코즈메 군.
 
코즈메 켄마:....... 그래, 찾아 줄게.
 
쿠로오는 주의를 끌기 위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합니다.
 
.
 
피아노, 칠판, 벽면의 초상화, 책상을 조사해 볼 수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해가 지기 전까지 찾으면 되는 건가. 버스 안에서 노을 지는 하늘을 내다보았던 것을 상기시켜 보면, 시간이 그리 많다고는 못 하겠다. 우선 칠판으로 걸어가 분필과 지우개를 올려놓는 공간, 그 주변, 칠판과 벽 사이의 좁은 공간이나 칠판 아래까지 샅샅이 살핀다.)
 
수업 이후 칠판을 제대로 지우지 않았는지, 필기체로 쓰여있는 글은 대부분 흐릿하게 남아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코즈메 켄마:음악 수업 듣는 기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대충 키워드 몇 가지만 기억해 두고는 책상들 사이를 걸으며 하나씩 뒤져 본다.)
 
가로로 긴 목재책상으로, 한 책상당 의자가 5개 정도 들어가 있습니다.
 
어느쪽 책상을 조사합니까?
 
코즈메 켄마:(오른쪽의 1 번째 책상부터 본다.)
 
벽에 달린 세 번째 초상화에서 끼긱, 하고 뭔가가 긁히는 소리가 납니다.
 
다른 모든 초상화는 쿠로오를 향하고 있지만,
 
새까만 그것은 명백히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쿠로오 테츠로:음. 좋지 않은데... 다른 곳을 먼저 살펴보는 건? (건반을 조금 힘주어 친다.)
 
코즈메 켄마:그래야겠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네게 눈길을 주었다가 초상화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관찰한다. 어디 이름이 적혀 있다거나 하진 않으려나.)
 
코즈메 켄마:
교육
기준치: 50/25/10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코즈메 켄마는 음악 수업마다 졸았다.)
(그렇지만 이런 최첨단 시대에 개인의 제한된 지식에만 의존하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이다. 휴대폰을 꺼내 '유명한 작곡가'를 검색한다.)
 
코즈메 켄마:
자료조사
기준치: 60/30/12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음악시간에는 잤지만, 우리에겐 휴대폰이 있습니다.
 
당신은 앞문에 가까이 있는 것부터 차례로,
 
쇼팽, 브람스, ???, 베토벤 의 초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초상화는 누구를 그린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런 게, 그림자처럼 검은 형체에 눈만 백색으로 칠해진 이상한 초상화니까요.
 
음악실에 원래부터 저런 괴기한 초상화가 붙어있었나요?
 
백색 눈동자는 지금도 또렷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쇼팽, 브람스, ....... 순간 버스에서 자신을 집어삼켰던 그것이 떠올라 소름이 돋는다. 관련된 악보를 찾으면 좀 더 실마리가 잡히려나. 곰곰히 생각하며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 네게 다가간다.)
 
쿠로오 테츠로:(건반을 반복해서 두드리다 고개를 들었다. 박자가 조금 틀어졌지만, 결국 시선을 모으기 위한 것이니 연주 자체는 크게 상관 없겠지. 다가오는 이와 눈을 마주한다.) 왜. 피아노 보려고?
 
코즈메 켄마:응. (먼저 피아노의 뚜껑 부분을 열어 안쪽을 살핀 뒤 몸을 숙여 피아노 아래와 밑부분도 확인한다.)
 
코즈메 켄마: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아노 아래에 떨어져 있는 포스트잇 메모를 발견합니다.
 
메모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코즈메 켄마:......? 악보가 있는 위치에? (메모를 읽으며 눈매를 찌푸린다.) 쿠로오, 악보 있어?
 
쿠로오 테츠로:악보? ...아니? (어깨를 으쓱한다.) 왜, 뭐라고 적혀있길래 그래?
 
코즈메 켄마:별거 아닌 것 같긴 한데. (네 쪽으로 걸어가 어깨 위로 팔을 뻗어서는 피아노의 앞면에 포스트잇을 붙인다. 이렇게 있으면 턱이 머리에 닿는 건 내 쪽인가. 그런 시덥잖은 생각과 함께.) 악보도 없이 제법 잘 치네.
 
쿠로오 테츠로:칠 수 있는 곡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길래, 열심히 연습 했었답니다, 이 쿠로오 씨도. 뭐어, 이 꼴이 된 뒤의 일이라 괴담이 되었을 뿐입니다만은. (힐끗, 포스트잇을 보던 눈이 칠판을 향한다.) 저기 적혀있는 것과 관련있는 것 아냐?
 
코즈메 켄마:안 보이는 녀석들한테는 그래 보일 만도. ....... 같이 치면 괴담은 안 되겠네. (흘리듯 덧붙이고 책상들로 돌아간다. 뭔가 순서가 중요한 건가, 이거.)
(오른쪽 첫 번째는 나중에. 그럼 우선은. 오른쪽 두 번째 책상으로 걸어간다.)
 
오른쪽 두 번째 책상을 조사하나요?
 
코즈메 켄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차근히 정리해봅시다.
 
칠판, 왼쪽에 있는 것이 바흐. 오른쪽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벽면의 초상화는 쇼팽, 브람스, ???, 베토벤 순이고요.
 
그러고보니 칠판엔 무어라 쓰여있었죠?
 
코즈메 켄마:(책상으로 걸어가던 중 뭔가 기시감이 들어 멈춰 선다. 악보, 악보....... 악보가 있는 위치에. 눈을 깜빡이며 다시 초상화들을 본다.)
 
초상화는 여전히 쿠로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당신을 보는 것을 제외하고요.
 
코즈메 켄마:(알아볼 수 있는 넷 중 초상화에 확실히 악보가 포함된 인물들은.) 바흐, 베토벤. (설마 이런 방탈출 카페 같은 형식이라고? 약간 얼빠진 표정으로 왼쪽 네 번째 책상에 접근해 본다.)
 
왼쪽 네 번째 책상을 조사하나요?
 
코즈메 켄마:(이것도 아니면 모르겠다. 조사한다.)
 
책상의 밑면을 더듬자, 무언가 종이가 만져집니다.
 
뭔가... 있네요.
 
코즈메 켄마:(종이를 책상에서 떼어 본다.)
 
직사각형의 종이입니다.
 
종이 안에 빨간 글씨로 한자가 기묘하게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코즈메 켄마:
오컬트
기준치: 31/15/6
굴림: 35
판정결과: 실패
부적 같은 건가......? (일단 떼어 낸 것을 네게 가져가 보여 준다.) 이런 걸 찾았는데.
 
쿠로오 테츠로:어, 오... 그거 같은데. (불길하다는 듯 반 걸음 주춤 멀어지며 건반을 꿍, 누른다.)
 
코즈메 켄마:아. (가까이 있고 싶지는 않으려나.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종이를 재차 유심히 살펴본다. 한자는 읽을 수 있을까. 뭐라고 적혀 있는 거지.)
 
잘... 모르겠지만.
 
이게 매개체는 맞는 모양이에요.
 
코즈메 켄마:해가 지기 전까지만 없애면 되는 거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쿠로오 테츠로:(고개를 두엇 끄덕이다 눈치를 슥 살핀다.) ...이 학교에 그것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코즈메 켄마:.......
몇 개 있는데?
 
쿠로오 테츠로:하나... 둘? 정도 더?
 
코즈메 켄마:그나마 다행이네.
당장은 어떻게 해야 확실하게 해제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어. 모아서 없애도 되면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쿠로오 테츠로:어... (힐끔 흘러나오는 검은 것을 본다.) 저게 조금 있으면 몸을 다 끌어낼 것 같은데요, 코즈메 군.
 
코즈메 켄마:(네 말을 듣고 벽면의 세 번째 초상화를 응시한다. 곤란하네.) 태우는 게 확실할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로 괜찮기를 바라는 수밖에. 손에 든 것을 반으로 찢어 버린다. 겹쳐서 다시 한 번. 두 번. 세 번. 갈기갈기 작은 조각이 되어 버릴 때까지.)
 
정체모를 것을 찢자, 초상화에 걸려있던 주문들은 전부 풀립니다.
 
초상화들의 시선도 정면으로 돌아가고, 액자 밖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검은 형체 역시 사라집니다.
 
코즈메 켄마:
정신
기준치: 68/34/13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감소 없음.
 
그제서야 쿠로오는 건반에서 손을 뗍니다.
 
코즈메 켄마:아, 됐다.
 
쿠로오 테츠로:하아... (안도한 표정.)
 
코즈메 켄마:(음악 소리가 끊기자 네 쪽으로 돌아선다. 꽤 오래 치고 있었는데 손, 안 아픈가. 시선이 손끝에 머물면 유령이라 그런 건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음은 어디야?
 
쿠로오는 음악실을 진저리를 치며 나가는 시늉을 하더니, 만족스러운 낯으로 말을 잇습니다.
 
쿠로오 테츠로:다음은 컴퓨터실…… 아.
 
아니, 말을 하려고는 했는데 끝까지 잇지 못하고 표정이 굳습니다.
 
시선이 앞에 고정된 걸 보면 무언가를 보고 저러는 것 같은데….
 
코즈메 켄마:......? (따라서 음악실을 나서려던 발걸음이 문앞에서 멈춘다. 괜한 경계심에, 질문도 않고 네 소매를 쥐어 가볍게 흔들기만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번에도 딱히 특별한 무언가는 없습니다.
 
그냥 여러 특별실과 동아리 부실들이 있는 빈 복도인데 뭘 보고 저러는 건지….
 
쿠로오 테츠로:(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가 슬쩍 웃는다.) 미안. 쿠로오 씨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다음이 컴퓨터실이란 말은 했던가?
 
코즈메 켄마:(뒤늦게 아무렇지 않은 척 무마하려 해 봤자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아무것도 없는 복도를 눈으로 쓱 훑었다가 너를 가늘어진 시선으로 응시한다.) 응, 그것만 말했어.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쿠로오의 표정을 좀처럼 읽지 못합니다.
 
왜인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집니다.
 
낯선 이가 맞긴 했습니다만.
 
쿠로오는 어색한 웃음을 걸고서 소매를 살짝 떨어뜨립니다.
 
쿠로오 테츠로:방금 막 생각 났는데, 다른 데에 볼일이 있어서. 이곳은 부탁해도 될까, 코즈메 군?
 
코즈메 켄마:(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 누구 때문에 하교도 못 하고 있는 건데. 허나 이 귀신과 함께 보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학습한 게 있다면, 바라는 일에 대해서는 지독하리만치 끈질기다는 것. 얕은 한숨을 내쉬곤 컴퓨터실 쪽으로 느릿하게 걸어간다.) 여기도 트랩만 해체하면 되는 거지?
 
쿠로오 테츠로:응. 그거면 충분해. 고마워. 나중에 쿠로오 씨가 갚을게! (안도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벽 너머로 모습을 숨기듯 훌쩍 사라진다.)
 
벽을 통과해서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져 버립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요?
 
.
 
쿠로오가 말한 의문의 컴퓨터실입니다.
 
앞문은 교사용 전자록으로 잠겨있고,
 
뒷문은 열려있는 것 같네요.
 
밖에서 컴퓨터실 내부를 살펴본다면 전등은 꺼져있지만, 창문의 블라인드가 전부 걷혀있어 밝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코즈메 켄마:(조용히 할 일을 하기 시작한다. 공간 파악부터 제대로 해야겠지. 교실에 들어서고 나면 뒷문을 다시 닫고는 가장 뒷줄의 컴퓨터들부터 앞으로 나아가며 하나씩 확인해 본다.)
 
전등 스위치는 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컴퓨터실 안으로 완전히 몸을 옮기면,
 
쾅!
 
하고 뒷문이 거세게 닫힙니다.
 
코즈메 켄마:......? (큰 소리에 잠시 퍼뜩 놀랐지만 트랩의 일부분이겠거니 한다.)
 
당신이 진정하고 있으면 창문을 밝히고 있던 블라인드 역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전부 쳐져,
 
컴퓨터실 내부는 삽시간에 어두워집니다.
 
블라인드 역시 다시 걷어보려고 해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 어두운 컴퓨터실 안에 홀로 갇히게 됩니다.
 
…… 정말 혼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코즈메 켄마: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귀찮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두워진 공간에 불을 비춘다.)
 
휴대폰을 꺼내 어두워진 공간에 불을 빛추면,
 
꺼진 모니터들이 갑자기 불규칙적으로 켜지기 시작합니다.
 
연속적으로 울려 퍼지는 기계음이 어딘가 괴랄하게도 들립니다.
 
앞면의 커다란 스크린 역시 갑자기 밝은 빛을 내며, 화면 위로 어떠한 문자가 떠오릅니다.
 
코즈메 켄마:(일단은 서 있는 자리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은 채, 모니터들이 전부 켜졌는지를 시선으로 훑고 스크린에 띄워진 것을 읽는다.)
 
 
저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기도 전, 스크린 위의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맑은 소녀의 음성이 출력됩니다.
 
 
소녀:이 거울 속에 방이 보이지? 물건들이 거꾸로 놓여 있을 뿐, 여기랑 똑같은 방이야.
……하지만 그것도 흉내만 낸 것일 수도 있어. 왜, 내가 왼손을 들면 거울 속 나는 오른손을 들잖아!
 
코즈메 켄마:(자기 소개도 않는 낯선 음성은 가볍게 흘려 들으며 스크린에서 둘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컴퓨터로 향해 조작할 만한 무언가가 있나 살핀다.)
 
화면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지 않습니다.
 
바탕화면에 눈에 띄는 메모장 폴더가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마우스를 옮겨 메모장 폴더를 열어 본다. 폴더명은 뭐지.)
 
새폴더에, 별다른 이름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메모장에는 다음과 같은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CB
 
코즈메 켄마:음. (오컬트부는 정말 할 짓이 없나 보다. 그런 상념과 함께 내용을 기억해 두고 첫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모니터 앞으로 간다.)
 
E번 컴퓨터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아....... 저쪽이 먼저인가. (왼쪽으로 두 자리 옮겨 본다.)
 
마찬가지로, 비밀번호가 걸려 있습니다.
 
무언가를 입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코즈메 켄마:(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E 컴퓨터로 돌아가 'CB'를 입력해 본다. 이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시도해서 나쁠 것 없겠지.)
 
E번 컴퓨터의 비밀번호 입력창에 CB를 입력하자, E번 컴퓨터의 잠금이 풀립니다.
 
마찬가지로 E번 컴퓨터의 바탕화면에도 역시 메모장이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어? (막상 풀리자 약간 당황한다. 눈을 끔뻑이다가 메모장을 확인한다.)
 
생각보다 암호가 간단한 것 같습니다.
 
메모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O A
 
코즈메 켄마:(뒤쪽 줄의 가장 오른쪽 컴퓨터, L 번 앞에 선다.)
 
마찬가지로 암호가 걸려 있습니다.
 
설마, 전부 이런 식인가?
 
코즈메 켄마:설마....... ('O A'를 입력해 본다.)
 
O A를 입력하자, 다시금 화면이 켜집니다.
 
마찬가지로 메모장 하나만 덜렁 놓여있습니다.
 
코즈메 켄마:(메모장 위에 마우스를 올려 두 번 빠르게 클릭 한다.)
 
마찬가지로 알파벳 두 개만이 놓여있습니다.
 
MC
 
코즈메 켄마:('CBO AMC'가 당장 무언가를 뜻하는 것 같지는 않다. P 컴퓨터로 걸어가 모니터를 확인한다.)
 
암호의 화면만이 깜빡이고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MC'를 입력한다. 아마 이게 마지막일 텐데.)
 
P의 화면에 암호를 입력하면,
 
마찬가지로 메모장이 놓여 있습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무언가를 조작할 틈도 없이,
 
띠리릭. 하고.
 
문의 도어락이 자동으로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코즈메 켄마:(도어락 쪽에 짦게 시선을 두었다가 메모장을 켜 본다.)
 
지금까지와 같이 알파벳 두 개만이 놓여 있습니다.
 
EK
 
코즈메 켄마:(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열린 앞문으로 걸어가 복도를 둘러본다.) .......
쿠로오, 된 거야?
 
코즈메 켄마: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나서기 직전, 컴퓨터실의 안, 어떠한 모니터에서 노이즈 낀 무너져가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코즈메 켄마:(자신에게 돌아가라 한 말이든, 누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전 남긴 말이든 이곳에서의 할 일은 마무리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일전 네가 벽 속으로 사라졌던 자리에 도달해, 멀쩡한 고체의 평면을 손끝으로 문질러 본다.)
 
당신은 그가 있던 자리로 이동합니다.
 
대체 그 소리는 어디서 들려왔던 걸까요?
 
곱씹어보면 비밀번호만 해제했을 뿐 딱히 주문에 관련한 특징적인 것을 찾지 못하긴 했습니다.
 
아직 컴퓨터실에 유령이라도 남아있는 걸까요.
 
애당초, 그곳에서 무얼 해야 할지도 듣지 못하기도 했네요.
 
아무리 기다려도 쿠로오는 보이지 않습니다.
 
찾아서 나서는 편이 좋을까요?
 
코즈메 켄마:(가만히 적막 속에서 눈만 깜빡이다가 게임기를 꺼내 라운드를 한 판 더 진행한다.)
게임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아.......
죽었어. (검붉게 물드는 화면과 동시에 낯을 구긴다.) 회피에 조금 더 집중해 봐야 하나. 무기 스탯을 바꿔 봐야 할지도 몰라.
(중얼거리며 게임기를 도로 넣고는 목소리를 살짝 높여 본다.) 쿠로오, 들려?
 
쿠로오에게서 들려오는 답은 없습니다.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았는데, 대체 어딜 갔는지.
 
조금, 찾아보도록 할까요?
 
귀찮지만 어쩔 수 없죠.
 
코즈메 켄마:....... (또 등짝을 때릴 일이 있다면 이번에는 있는 힘껏 때려 주리라 다짐하며 복도를 느릿하게 걸어나간다.) 나 끝난 것 같은데, 그쪽은 아직이야?
 
주변을 둘러보면 음악실, 방금의 컴퓨터실, 여러 동아리 부실, 등등이 보입니다.
 
그러고보니 쿠로오가 오컬트 부를 언급했었는데.
 
그곳으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코즈메 켄마:(오컬트 부실 문 앞에 서서 명패를 올려다본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 언급하던 걸 보면 여기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하아........ (누구 때문에 하교도 못 하고 이러고 있는데. 문을 슬쩍 열어 본다.)
 
오컬트부의 부실은 그것의 아이덴티티를 증명이라도 하듯 밖에서 쳐다보기만 했는데도 귀신이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부실 가까이 가면, 열린 문틈 사이로 뼈마디가 돋보이는 가는 팔이 튀어나와 당신의 팔목을 세게 붙잡습니다.
 
 
???:너, 악귀, 악귀에 씌였어. 악귀라구. 그건 악귀야!!
 
코즈메 켄마:무슨......! (뒤로 물러나며 팔을 뿌리친다.)
 
팔의 주인은 문의 안쪽으로 당신을 끌어당기며, 음침하고도 불길한 이야기를 반복해 중얼거립니다.
 
코즈메 켄마: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
 
코즈메 켄마:
근력
기준치: 30/15/6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근력
기준치: 50/25/10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어엇, 엇, 어…!
 
당신이 힘을 주어 당기자 되려 팔의 주인공이 종잇장처럼 끌려 나옵니다.
 
아귀 힘은 강한데,
 
버티는 힘 자체는 그리 세지 않은 모양입니다.
 
.
 
코즈메 켄마:(복도로 빠져나와 상대의 행색을 살핀다.) 뭐라는 거야. 알아듣게 말해.
 
끌려나온 이는, 왠지 낯이 익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검은색 지저분한 곱슬머리.
 
다크서클, 음산한 분위기.
 
분명… 같은 반이었죠?
 
코즈메 켄마:너....... 이름이 뭐였더라. 그보다, 악귀라니 무슨 소리야.
 
명찰을 보면 나카시타라 적혀있습니다.
 
설마 쿠로오가 말했던 오컬트 부 부장일까요?
 
 
나카시타:네, 네가 반드시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어. 너에게 악귀가 붙었어. 살고 싶으면 당장 악귀를 제령해야 해…!
 
코즈메 켄마:(눈을 가늘게 뜨고 나카시타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연다.) 나 그런 거 안 믿는데.
 
 
나카시타:하지만, 너도 느꼈잖아. 널 따라다니고 있는 걸...! 먹힐 거야. 제령하지 않으면 곧 먹힐 거라고!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로 설득한다.)
 
코즈메 켄마:....... 그게 악귀라는 증거는 있어?
 
 
나카시타:… 지금, 이미 천천히 먹히고 있으니까. 악귀가 아니고서야 네 존재를 먹을 이유가 없잖아!
 
코즈메 켄마:(여전히 미심쩍다는 낯을 기울인다.) 내가 먹히고 있다는 증거는......?
 
 
나카시타:출석부를 봤어.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것이 있었으니, 확인해보고 와도 좋아. (양주먹을 꾹 쥔다.)
 
코즈메 켄마:그래, 그럼. (잠시 생각하다가 짤막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나카시타의 어깨 너머로 부실 내부를 들여다본다.)
 
부실 안은 암막 커튼이 쳐져 있어 아까의 컴퓨터실만큼 어둡지만, 해골모양의 빛나는 장식품들과 작은 스탠드등을 곳곳에 배치해두어 전체적으로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대비가 크다는 인상입니다.
 
부실의 중간에는 검은 천으로 덮인 책상과, 그 위에 놓인 보라색 투명구슬이 빛나고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책상 쪽으로 턱을 까딱인다.) 저건 뭐 하던 거야?
 
 
나카시타:저건…… 악령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어. 네 근처에서 널 자꾸 위협하니까….
 
코즈메 켄마:(귀찮은 거면 몰라도 '위협'당한 기억은 없지만, 괜히 반박했다가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대충 넘긴다.) 출석부, 네 말대로 확인하러 갈 건데. 같이 와 줄 거지? 나 위험하다며. (여전히 붙들려 있는 팔을 내려다본다.) 이건 좀, 놔 주면 고맙겠고.
 
 
나카시타:아, 아! 미안해! (서둘러 손을 놔주고 끄덕이며 주춤이다 안으로 쏙 들어가서 무언가를 바리바리 챙긴다. 책이랑, 거울이랑... 구슬까지 주섬이며 넣어 어깨에 맨 뒤에야 헐레벌떡 나왔다.)
 
코즈메 켄마:(저거면 쿠로오가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 수 있으려나. 그리 생각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교실 방향으로 걷는다.)
 
.
 
매미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려옵니다.
 
창 너머의 운동장에는 뒤늦게 하교하는 몇몇 학생들과 운동장을 뛰는 야구부 부원들이 보입니다.
 
당신은 다시 2학년 1반 교실에 돌아왔습니다.
 
코즈메 켄마:(자신의 책상 앞에 서서 잠시 창문 밖에 시선을 둔다. 미묘하게 붕 떠 있는 기분. 현실성이 없어. 지박령이니 악귀니,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려서는. 얕은 한숨과 함께 칠판 앞으로 걸어가더니, 분필을 하나 집어들어 나카시타에게 내민다.) 악귀 이름은 알고 있어?
 
 
나카시타:(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악령에게 이름을... 물을 이유는 없잖아. (되려 그것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코즈메 켄마:(팔은 여전히 뻗은 채로 고개를 기울인다.) 출석부에, 내 자리를 차지한 걸 봤다며.
 
 
나카시타:얼굴이 바뀐 것만 보고 이름은 보지 않았으니까…. (조금 시무룩해져서 웅얼.)
 
코즈메 켄마:음. 그렇구나. (약간 몰아세웠나. 분필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출석부를 찾아 교탁 근처를 살핀다.)
 
이 교실에 볼 수 있을 법한 것은...
 
[교탁/사물함/책상] 뿐인 것 같습니다.
 
코즈메 켄마:악귀....... 는 언제부터 봤어? (교탁 위와 안쪽을 살펴본다.)
 
 
나카시타:얼마 되지는 않았어. 아마 길진 않을 텐데…. (곰곰이 생각하다 무언가 생각난 듯 박수를 친다.) 그러고보니 교실에, 퇴마에 사용될 법한 것들이 있을 거야! 나도 좀 더 뒤져볼게!
 
나카시타가 잽싸게 당신의 반대편으로 이동합니다.
 
정말 교실을 뒤질 모양입니다.
 
교탁의 위에는 위에는 출석부가 놓여 있습니다.
 
아래에는 특별한 게 보이지 않네요.
 
코즈메 켄마:(퇴마는 별로 할 생각이 없는데. 헛걸음 하는 나카시타를 시선으로 따르다가 출석부를 펼친다.)
 
출석부를 펼치면,
 
나카시타의 말대로 당신의 이름과 사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쿠로오의 이름과 사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 (눈을 조용히 깜빡이다가 이름 외에 더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적혀 있는지 읽어 본다.)
 
딱히 그 외에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코즈메 켄마:(출석부를 다시 닫고 고개를 든다.) 있잖아, ....... 그래. 나카시타. 그 구슬로 악귀를 볼 수 있댔지.
 
 
나카시타:응? 응. 볼 수 있어…! (책상을 뒤지고 있다.)
 
코즈메 켄마:지금 보여 줄 수 있어?
 
 
나카시타:응...?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근처로 다가간다. 지금 어디 즈음인지 보여달라는 건가?)
 
코즈메 켄마:계속 쫓아다니다가 사라져서 그 뒤로 안 보이거든. (앞쪽 열의 책상 곁에 선다.)
 
 
나카시타:(책상 위에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고 두꺼운 책을 옆 책상에 내려둔 뒤 쿠션을 꺼내 아래에 깔고 수정구슬을 조심스럽게 얹는다. 조심... 조심…….)
 
코즈메 켄마:(뭔가 되게 복잡한 절차구나, 생각하며 얌전히 부산스러운 과정을 기다린다.)
 
 
나카시타:(수정구슬 위에 손을 얹고 힘을 흡! 준다. 구슬을 빤히......)
 
나카시타는 한참 침묵하더니 기묘한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립니다.
 
 
나카시타:이 근처를 떠돌고 있어…….
 
코즈메 켄마:그야....... 학교 안에 있을 테니까.
 
 
나카시타: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앗, 집중 풀렸다. 다시 구슬을 꾸욱 쥔다.) 교실 근처를 돌고 있단 말이야.
 
코즈메 켄마:그럼 왜 안 나오지. (눈살을 찌푸리며 옆에 올려져 있는 책의 표지를 만지작거리다가 펼친다.) 고마워.
 
 
나카시타:아아니야! (안색이 환해진다. 믿어주는구나!)
 
이 책의 제목은,
 
오컬트 주문의 시전법이네요.
 
몇 번이나 읽었는지, 유독 한 부분이 길이 들어있어 쉽사리 펼쳐집니다.
 
 
나카시타:(팟. 그제서야 본래 목적을 떠올린 듯 책을 가리킨다.) 제령! 제령 해야해. 알겠지? 잊지 마. 먹히면 안 되니까...!
 
코즈메 켄마:돌아갈 곳이 없다라....... (중얼거리며 '지박령' 또는 '타임 루프' 따위가 적힌 페이지가 있는지 팔랑거린다.)
 
지박령이나 타임 루프가 적힌 페이지는 있습니다만,
 
그 두 가지가 함께 적힌 케이스는 없는 것 같네요.
 
코즈메 켄마:있잖아, 지박령의 해방 주술도 송환 주문인 걸까.
 
 
나카시타:해방…?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눈을 한다.)
…혹시, 그런 주문을 찾는 거야?
 
코즈메 켄마:아니,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주문이거든.
 
 
나카시타:뭐...! 너, 혹시 평소에 오컬트에 관심이... (반짝이는 눈)
 
코즈메 켄마:(엮이면 상당히 귀찮아질 것 같아. 그늘 드리운 낯을 옆으로 돌린다.) 아니....... 그런 거 아냐.......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친구한테 들었어.
 
 
나카시타:그렇구나... (시무룩)
 
코즈메 켄마:....... (잠시 정적이 흐르고, 사물함 쪽으로 걸어가 열리는 것이 있는지 본다.) 책상에선 뭐 찾은 거 있어?
 
 
나카시타:아, 으응. 내가 평소 읽던, 책인데...!
볼래? (기대하는 눈…….)
 
코즈메 켄마:어어, 그래. 보여 줘.
 
 
나카시타:……! (책을 펼쳐 보여준다.)
 
코즈메 켄마:(펼쳐 주는 것을 읽어 본다.)
 
나카시타가 펼쳐준 페이지에는 제령과 송환 주문이 쓰여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계속 말하던 게 이거구나. 고마워. (나라면 제령 쪽만 보여 줬을 텐데. 그리 생각하며 내용을 읽어 보고는 마저 사물함을 뒤진다.)
 
사물함을 살피면, 당신은 이곳마저도 당신의 이름이 있어야 할 곳에 쿠로오의 이름이 있음을 확인합니다.
 
더불어…… 무척이나 눈에 띄는 사물함이 있네요.
 
오컬트 느낌이 나는 스티커가 가득 붙어있습니다.
 
코즈메 켄마:(눈매를 좁히며 왠지 나카시타의 사물함 같아 보이는 것을 열어 본다.)
 
 
나카시타:앗……. (민망한 얼굴.)
 
사물함을 열어본다면, 한 손에 들어올 것 같은 작은 손거울을 발견합니다.
 
주술에 사용하기 적합해 보이네요!
 
코즈메 켄마:이거 좀 빌릴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손거울을 집어든다.)
 
 
나카시타:엇, 어, 어? (내, 내 손거울…! 하지만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굉장히…
 
오컬트스러운 손거울이로군요.
 
보랏빛 계열에 뒷부분에 회색 해골이 그려진 것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코즈메 켄마:따로 쓸 만한 게 없어서....... (손거울의 디자인을 보고 말문이 턱 막혔지만 빌리는 입장이니 가만히 주머니에 넣는다.) 그나저나.
쿠로오, 이 근처라며.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나카시타:아, 그것에 대해서 할 얘기가 있는데…….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본다.)
 
코즈메 켄마:......? (뭘 한 거냐는 시선을 나카시타에게 둔다.)
 
 
나카시타:그. 내가… 볼 때마다 제령 주문을 시도해서…. (우물쭈물 머뭇.)
아마 내게서, 도망치는 게 아닐까 해......
 
코즈메 켄마:아....... 나카시타, 지금 더 들고 있는 거울 있어?
 
 
나카시타:어? 어어, 없는데. (도리도리.)
 
코즈메 켄마:들었어? 지금은 나와도 별 짓 못 할 테니까 괜찮아.
(어느 방향에 있을지 모르는 귀신에게 말을 걸며 느릿하게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본다.) 찾으러 가게 만들 생각인가.......
 
쿠로오 테츠로:(벽 너머에서 스륵 고개를 내민다.) …전에도 빈손일 때 서슴없이 쿠로오 씨를 공격하던데. (가늘게 뜬 눈.)
 
코즈메 켄마:뭘 하고 왔길래 이렇게 오래 걸려. (벽에서 튀어나온 머리로 걸어간다.) 부탁한 건 끝냈어.
 
쿠로오 테츠로:지박령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랍니다. (자연스럽게 몸을 앞으로 내밀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오. 고마워, 코즈메 군~ 어쩐지 몸이 가볍더라니.
그래서, 코즈메 군은 그걸로 날 제령할 생각? (책을 슬쩍 눈짓한다.)
 
코즈메 켄마:아직은. (비어 있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새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간만에 보는 낯이 은근히 반갑다. 이상한 학교에서 이상한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하다 생각하며 사물함을 가리킨다.) 사물함, 내 거 없어진 거 알아?
대신 네 이름이 적혀 있어. 출석부도 그렇고.
 
쿠로오 테츠로:오. 그거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인데? 왜 쿠로오 씨의 이름이 적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 봐서는 쿠로오 씨가 정말… 악령이라도 된 것 같겠어. (짐짓 억울하단 얼굴로 울상을 짓는 시늉을 하다 제 턱을 쓸었다.) 그것에 관해선, 솔직히 감이 아주 잡히지 않는 건 아닌데.
 
코즈메 켄마:(오컬트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탓에 눈치채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당장 자신이 협박을 당했다든가 잡아먹히는 기분이 든 적 없으니 여기저기에 대체된 이름들을 보고도 당장은 가능성을 열어 두기로 했다. 마저 말해 보라는 듯 조용히 옆의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쿠로오 테츠로:되게 뜬금없는데, 갑자기 번쩍 떠올랐지 뭡니까. 쿠로오 씨가 여기서 나가려고 했던 이유 말이야. (근처 책상에 대충 걸터 앉으며 턱을 괴는 시늉을 했다. 시선을 내려 눈을 맞춘다.)
 
쿠로오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얼굴로 당신과 눈을 맞춥니다.
 
고작 가까이서 쳐다보고 있을 뿐인데 왜 이토록 불안한 기시감이 드는 것일까요.
 
쿠로오의 옆얼굴로 쏟아지는 노을 진 햇빛이 그것을 투과해 투명하게 일렁입니다.
 
자꾸만 밀려오는 이 기묘한 감각에 호흡이 멎을 것만 같습니다.
 
코즈메 켄마:
정신
기준치: 68/34/13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묶여 있는 게 답답해서 나가려던 거 아냐......? (기울어진 햇살이 눈부셔 눈매를 찌푸리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는다. 기분 나빠. 이건 분명 비이성적인 반응이다. 그리 인지하면서도 울렁이는 감각이 숨통을 조여 와 허벅지의 옷감을 꾹 쥐었다 놓는다.)
 
쿠로오는 대답 없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 순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은 언젠가의 기억입니다.
 
흰 천장과 낡은 벽, 침대 하나 놓여있는 것 외에는 텅 빈 넓은 방.
 
당신은 침대에 앉아있고, 쿠로오는 그런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불편한 공기와 긴 적막이 감돕니다.
 
먼저 운을 뗀 건 누구였을까요.
 
두 사람 사이에 몇 번의 대화가 오갑니다.
 
너무도 정적이고, 우울하고,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쿠로오의 시선을 당신은 끝끝내 피합니다.
 
쿠로오 테츠로:……그럼 내가 데리러 갈게.
 
쿠로오의 마지막 말로 대화는 끝이 납니다.
 
이 기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몽롱하고 불확실한 기억의 퍼즐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입니다.
 
그런데도 확실한 것 하나는, 언젠가의 네가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한 것.
 
그리고…
 
쿠로오 테츠로:돌아갈 곳이 있었기 때문이지. (언제나와 같이 장난기가 가득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기울였다.)
집에 돌아가자. 데리러 왔어.
 
네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는 것.
 
코즈메 켄마:집......? (집이, 어디였더라. 방금 그건 내 기억이 맞긴 한 건지. 그렇다면 어째서 여태껏 잊고 있었던 건지. 너는 왜 죽어서 지박령이 됐으며, 나는 왜 살아서 이렇게 재회하게 된 건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지만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있으리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혼란을 떨치지 못한 시선이 네게 머문다.)
너, 누구야?
 
.
 
쿠로오 테츠로:누구긴. 코즈메 켄마 군의 하나뿐인 소꿉친구 쿠로오 테츠로 씨지요. 이것 봐, 이것 봐. 다 잊을 줄 알았다니까. 하기사, 쿠로오 씨도 이 모양이 되었는데 이상할 것도 없지.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이고서 씩 웃었다. 솔직히, 믿을 수 있을 리가 없겠다 싶지만.)
 
온종일 보고 들었던 '돌아가자'는 메세지입니다.
 
어디로?
 
왜?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뇌리에 감돕니다.
 
알고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텅 빈 정보입니다.
 
누군가 억지로 삭제한 것만 같은 공간에서 당신은 스스로 방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치익
 
그런 빈 공간을 메꾸기라도 하듯, 노이즈 섞인 불쾌한 기계음이 직접적으로 당신의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뇌에 전극을 심어둔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토기를 간신히 눌러 담습니다.
 
코즈메 켄마:윽. (뇌에도 전원 버튼이 있다면 당장 눌러 버리고 싶었다. 머리를 붙들고 어질한 세상을 스스로 차단하면, 느릿하게 눈을 다시 떴을 땐 무릎 사이 교실 바닥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소꿉친구라고. 오늘 처음 본 귀신과 내가.)
너는 어쩌다가....... (불쾌한 감각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해 홉뜬 눈으로 너를 올려다본다. 나는 네 이야기를 믿을 수 있나.) 어디로, 어디로 갈 건데?
 
쿠로오 테츠로:집으로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켄마 군~ (무얼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어투로 읊으며, 빙글이며 웃었다. 과장스러운 손짓, 특유의 여유로운 목소리. 그 끝이 희미하게 떨리는 걸, 오래 알고 지낸 이는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겠지. 그래, 켄마. …네가 지금 반응하는 것처럼.)
 
순간, 당신의 앞으로 창이 하나 떠오릅니다.
 
숙여진 시야 너머, 자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검고 푸른 창이 쿠로오의 모습을 가립니다.
 
아, 이것은.
 
당신이 잊고 있던,
 
당신이 지워버린 이야기입니다.
 
코즈메 켄마:그러니까 집이 어디, ....... 이건 또 뭐야. (빠르게 굴러가는 눈동자가 창에 떠오른 내용을 흡수해 내고, 검은 배경에 흰 활자들을 뇌리에 입력하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전부 읽고 나서도 이해되지 않아 두 번 세 번을 더 읽었다.) 가상 현실이라고......? 이 헛소리를, 지금. (믿으라는 거야? 혼란 위에 답답함과 억울함이 덧그려져 언성을 높인다. 그럼에도 어쩐지 네가 말하면 자꾸만 믿고 싶어져서, 문장을 끝까지 뱉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일까. 네게도 이 창이 보일까. 반대편에 비칠지 알 수 없는 고개를 떨군다.) 그럼 너는 알고 있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노이즈가 멎습니다.
 
울렁거림과 메스꺼운 감각의 끝에,
 
당신은 몇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기는 가상현실이고, 쿠로오는 당신을 꺼내기 위해 이 가상현실에 함께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요.
 
프로그램의 오류로 기억을 잃게 된 쿠로오는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라는 사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애초에 우리가 나가야 할 곳은 교문이 아닌 이 가상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쿠로오 테츠로:알고 있지. 그래서 데리러 온 거야, 켄마. (담담히 목소리를 읊는다. 헛소리, 라고 생각할 정도로 동화가 많이 되어버렸다는 것도, 그만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것도 알고 있다. 이 가상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빠져든 것도, 이제는 이해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테지. 네게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 거야, 켄마. 난 어쩌면, 그저 내 욕심 때문에 너를 데리러 온 것일 수도 있겠네.)
 
프로그램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앞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네요.
 
이 세계에서 살아가거나, 아예 나가거나…
 
아마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버그라는 건,
 
코즈메 켄마: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마 이걸 의미하는 거겠죠.
 
'돌아가야 할 곳' 말이에요.
 
차원을 넘어온 괴물은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갈 곳이 없는 악령이라면 누군가의 육신으로.
 
…우리는 우리가 원래 있던 곳으로.
 
이것은 우리가 현실로 송환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쿠로오 테츠로:…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이곳에 남아도 좋아. 나 또한 여기 남을 테니까. 과거의 네가 이러한 선택을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 (별 것 아닌 것을 이야기하는 척 담담히 웃었다.)
 
우리에겐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돌아가야 할 온전한 장소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스스로 피하고자 했던 현실이고, 외면하고자 했던 장소니까요.
 
만약 돌아가 또다시 후회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그 다음은?
 
코즈메 켄마:(알고 있던 모든 것이 백지로 돌아가고, 얼마인지 모를 시간 동안 구축해 놓은 기반이 뒤흔들린다. 애꿎은 바닥의 판자들을 고요히 노려보며 말을 잇는다.) 돌아가면 괴로울 거라고 생각해. 그곳의 나는, 기억나지는 않아도. 뭔가가 견딜 수 없어서 여기로 온 거잖아.
(주머니 속의 손거울이 유독 묵직하게 느껴진다. 조각조각 흩어진, 잊고 있었던 것들이 기억으로 소생되기 전 감정으로 물밀듯이 차오른다. 너를 두고 올 수 있을 정도로 마주보기 싫었던 일이 뭐였을까.)
내가 돌아가면, 쿠로. 후회할까.
 
쿠로오 테츠로:괴롭겠지. 아마, 후회도 할 거야. (어떠한 정보도 숨기지 않았다. 그것을 숨긴다는 것은 너를 기만할 뿐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모든 것을 알리고, 선택은 온전히 네게 맡긴다. 이곳으로 온 것도, 이곳에서 영위한 것도 모두 네 선택이었으니, 그것을 부수는 것 또한 오로지 네게 맡김이 옳았다.)
(감히 예상컨데, 네가 돌아간다는 선택을 한다면, 돌아가자마자 내게 불만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화를 낼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시 같은 선택을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쓸지도 모르지. 굳이 이런 것이 없더라도 넌 네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녀석이니까.)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광기에서 비롯된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누군가의 장난일지도 모르죠.
 
쿠로오가 정말 악귀이고,
 
정말 당신에게서 제령해야 하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어쩌고 싶나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쿠로오는 재촉 없이 꺼져버린 창 너머로 당신을 가만히 응시합니다.
 
코즈메 켄마:반대로 이곳에 남는다면, 후회는 불가능하겠지. 기억을 지워 준댔으니까. (나는 평범하게 '알던' 대로, 편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턱을 들어 파동 없는 시선을 마주한다. 일그러진 호박 빛의 홍채는, 쓰라려 보일 테다. 어쩌면 벌써부터 원망을 한껏 담아, 왜 자신에게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드냐 추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은 너도 지워질 텐데.
(그곳에서 우리는 소꿉친구였다고 했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사이로 지내게 될지 모르지. 나는 다시 너를 잊고, 너는 남아 있는 나를 지우고. 잘게 떨린 입술이 벌어져 소리를 모아 낸다.) 나를 왜 데려가고 싶어?
 
쿠로오 테츠로:(이어지는 질문에 입술이 굳게 닫힌다. 어딘가 서글픈 낯으로, 그러나 곧게 이어지는 눈동자를 네게 얹었다.) 기억을 지우면, 한동안 그런 눈동자는 못 보려나? (그것이 못내 재미있다는 듯 일부러 키득이며 웃는 소리를 내었다. 이런 표정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다행스럽게도 처음이 아니라, 능숙하게 반응할 수 있었지만. 턱을 괴고서 제 뺨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글쎄. 다시 일어나서 움직이는 걸 보고 싶었으니까? (슬그버니 입꼬리를 올린다. 그러다 재미있는 무언가를 떠올리기라도 한 듯,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도 그걸 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사실 이젠 어디든 상관 없어. 편하게 생각 해.
 
코즈메 켄마:....... (가벼운 말투와 웃음기. 애써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다. 분명 간절히 바라는 게 있을 텐데도.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인가 보다. 주머니에서 기괴한 손거울을 꺼내 든다. 맑은 유리에 반사된 스스로의 낯은, 한심할 정도로 괴로워 보였다. 미안해.) 쿠로.
나, 다시 찾아 줄 수 있지?
(프로그램이고 뭐고, 너라면 믿으니까. 네게 기대어 나약함에 안주한다. 시선으로 애원하며, 끝까지 네 쪽으로는 돌려지지 않은 거울을 책상 모서리에 내려쳐 깨뜨린다.)
 
.
 
쿠로오 테츠로:(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결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네 후회도, 원망도 아닌 멀쩡히 걸어다니며 게임을 하고, 이따금 배구에 눈길을 주고, 가끔 애플파이 외의 것은 먹고 싶지 않노라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었으니까.)
아무렴. 쿠로오 씨 특기 아니겠습니까, 숨어있는 켄마 군을 찾는 것!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어디에 있든, 이 쿠로오 씨가 찾아낼 테니까.
 
우리는 이곳에 남아있기로 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바뀐다는 걸까요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요.
 
잠깐의 정적이 흐릅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걸터앉아있던 쿠로오가 갑자기 당신을 향해 입을 엽니다.
 
아마 지금의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였을 텐데,
 
들려온 것은 노이즈 섞인 기계음 뿐입니다.
 
.
 
.
 
.
 
쿠로오 테츠로:더위 먹었어?
 
차가워.
 
갑작스레 뺨에 닿는 한기에 당신은 눈살을 찌푸립니다.
 
고개를 들어보면 걱정스러운 표정의 쿠로오가 당신에게 캔 음료를 건네고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엔 당신과 쿠로오만이 서 있습니다.
 
코즈메 켄마:으, 차가워.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려 뺨을 떼어냈다가, 흐릿한 시야에 초점이 맞춰지면 떨떠름하게 건네진 것을 받아든다.) 그런가.......
 
쿠로오 테츠로:그런 것 같은데? 코즈메 군, 더위에 상당히 약하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새삼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한다.) 얼른 마시세요. 오늘은 쿠로오 씨가 특별히 쏠 테니까.
 
코즈메 켄마:탄산 든 건 별론데....... (내리쬐는 태양열이 유독 따갑다. 미간을 좁히며 눈썹 위로 손 그림자를 드리워 봐도 녹아 버릴 듯 기운 빠지는 감각은 가시지를 않자, 캔을 따서 두어 모금 들이킨다.)
 
쿠로오 테츠로:아차. 그 생각을 못했네. 지금이라도 다른 것으로 사다 줄까? (어디, 용돈이 얼마나 남았더라~ 따위의 것을 생각하며 가방을 가볍게 뒤지는 시늉을 한다. 이 근처에 지갑이~ 앗, 너무 깊게 들어갔나?)
 
…별다른 것 없는 하굣길입니다.
 
당신이 이미 깨진 거울을 손아귀에 쥐고 골몰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을 제외하면요.
 
…?
 
방금 무슨 생각 중이었죠?
 
사람을 죽일 것만 같은 열기에 저도 모르게 잠시 백일몽이라도 꾼 것 같습니다.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요.
 
그냥, 현기증이 날 정도로 더웠던 것 같은데….
 
코즈메 켄마:이건 뭐지. (산산조각 난 거울을 잠시 노려보다가, 어떻게 봐도 자신의 것은 아닌 물건을 정류장 벤치에 올려놓는다.)
됐어. 집에 가서 과일 빙수 시켜 먹을래.
 
뭐, 그렇죠.
 
구태여 기억해내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별 의미 없는 꿈일 테니까요.
 
코즈메 켄마:정말 더위 먹은 것 같으니까.......
 
쿠로오 테츠로:흐음. 아, 과일 빙수 시켜 먹을 거면 쿠로오 씨도 같이 가도 돼? 혼자 먹기에는 아무래도 여러모로 부담이~ (치근덕대며 붙는 시늉을 한다.)
 
쿠로오는 여전히 당신의 옆에 앉아있고, 매미소리는 시끄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앞엔 낡은 버스가 도착합니다.
 
…여전히?
 
뭐, 전학 온 이후로 줄곧 붙어있었으니, 여전히도 이상한 말은 아니겠어요.
 
어서 버스에 탑시다.
 
저걸 못 타면 한참 기다려야 하잖아요.
 
코즈메 켄마:(묵직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사이로 먼저 발을 뻗어 버스에 오른다.) 같이 먹을 거면 쿠로오 네가, 음. 게임 좋아해?
 
쿠로오 테츠로:(뒤를 따라 버스에 오르며 골몰하는 시늉을 한다.) 오야, 쿠로오 씨를 게임으로 꼬드기겠다는 뜻이십니까? 유감스럽게도 게임으로 승부를 보진 않는답니다~ 코즈메 군이 나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으니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거잖아?
 
코즈메 켄마:(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닿지 않으려 몸집을 줄이며 빈 자리를 찾다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본다.) 하아? 당연하지, 안 질 거야. 빙수 사 주는 대신 같이 게임 하자는 이야기였는데. 내키지 않는다면 집에 가고.
 
쿠로오 테츠로:아차. (이크,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당연하다는 듯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거였으면 미리 말을 해주지 않고. 어디 빙수가 좋은데? 주로 먹는 곳 있으십니까, 코즈메 군?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거죠.
 
눈앞의 사소한 것들.
 
일상 말이에요.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 됩니다.
 
앞으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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